악덕의 윤무곡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4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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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바 아니다. 어차피 과거가 알려지기 전부터 악덕 변호사 취급을 받았다. 예전의 악행이 폭로돼도 큰 변화가 있는 갓은 아니다. 미코시바는 새삼 인간 인식의 얄팍함을 떠올렸다. '악덕'의 관을 고매한 변호사에게 씌우면 교활이 되고, 범죄자에게 씌우면 흉악이 된다. 빈곤한 상상력이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데 방해가 되는 줄도 모르고 희희낙락 떠드는 모습은 우스꽝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다.    p.109

<속죄의 소나타>,<추억의 야상곡>, <은수의 레퀴엠>에 이어지는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그 네 번째 작품이다.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는 아마도 유사한 장르의 시리즈물 주인공 중에서 가장 파격적인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그는 변호사가 되기 전 엽기적인 살인으로 시'체 배달부'라고 불리던 열네 살 소년 살인범이었다. 죄의 무게와는 상관없이 어린 나이 때문에 의료 소년원에 수감되었고, 그곳에서 만난 교관 이나미 덕분에 속죄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인생의 경로가 달라졌다. 덕분에 의료 소년원은 겨우 5년 만에 가퇴소했고, 3년 뒤 스물두 살 때 사법고시를 한 번에 합격해 변호사가 된 것이다. 잘 나가는 변호사로서 명성을 쌓았지만, 그 명성이라는 것이 변호사라기보다 사기꾼에 가깝고 논리에 속임수를 덧붙이는 등 거의 법 이론 울타리 밖에 있는 전법으로 승리를 거머쥔다는 거였지만 말이다. 거기다 돈 많고 질 낮은 범법자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변호해 주는 대가로 거액의 보상을 요구하는 악질 변호사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그는 시리즈 두 번째 작품에서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과거가 밝혀져 '시체 배달부'라는 예전의 별명을 되찾게 되었다. 그의 과거를 알게 된 모범적인 기업들이 연이어 고문 계약을 해지하는 바람에, 임대료를 내기 어려워 조금 저렴한 곳으로 사무소도 이전을 해야 했고 말이다. 과거 범죄 이력이 만천하에 드러난 덕분에 멀쩡한 의뢰인은 하나 둘 떨어져 나갔고, 큰손 고객이라고 하면 광역 폭력단 고류회 정도만 남아 있는 상태였지만 여전히 그는 변호사로 나름의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시리즈 세 번째 작품에서 의료소년원 시절 교관이었던 이나미가 살인 혐의로 체포되어 미코시바는 자처해서 이나미의 변호를 맡겠다고 나섰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그 동안 소년원생들에게 가르쳤던 대로 자신 또한 벌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반드시 처벌받겠다고 주장했고, 악덕 변호사에게는 최악의 의뢰인이 되고 만다. 그리고 시리즈 네 번째 작품에서 그는 그 당시보다 더한 '최강의 의뢰인'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재혼한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자신의 친어머니 이쿠미의 변호를 맡게 된 것이다. 

“그런 괴물을 낳은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괴물을 그대로 괴물로 키운 건 부모니까. 하지만 정작 그 괴물이 고작 열네 살이었던 탓에 재판도 제대로 받지 않은 채 어느 소년원에 들어갔고 결국 아무 죄도 묻지 못했다지 뭐요? 살해된 여자아이와 그 가족들만 딱할 따름이지. 그럼 적어도 범인 대신 부모가 책임을 지는 게 도리 아니겠소?”    p.177

이른 아침, 한 저택에서 '남편이 거실에서 죽어있다'라는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아내였고, 유서를 남겼다는 점에서 경찰의 최초 견해는 자살이었지만 그 뒤 이어진 수사로 타살 혐의가 떠오른다. 남편이 부자였고, 식구도 아내뿐이라 재산을 노리고 접근해 재혼하고, 살인에 이르게 되었다는 의심이 든 것이다. 물론 아내는 자신이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고 하고 있으며, 그들은 작년에 구혼 파티에서 처음 알게 되었고, 둘 다 재혼이었다. 딸은 어머니의 변호사를 구하려고 돌아다녔지만, 그녀가 오래 전 '시체 배달부'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고 모두들 의뢰를 거절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수십 년 인연을 끊고 살아온, 쌓이고 쌓인 원한으로 말도 섞기 싫은 오빠인 미코시바 레이지를 찾아오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이름을 바꾸고 과거를 버린 채 살아왔던 미코시바는 30년 만에 여동생 아즈사와 어머니 이쿠미를 만나게 된다. 과연 이쿠미는 재혼한 남편을 자살로 위장해 살인을 한 것일까. 과연 미코시바는 자신이 지은 죄를 짊어진 가해자 가족의 비참한 과거와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과연 모자 2대에 걸친 살인 계보,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는 공식이 증명될 것인가. 살인을 저지르는 행위에 유전적 요소가 작용하는가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한 번 악인은 영원히 악인인가, 진정한 속죄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좀처럼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질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미코시바 레이지 시리즈'를 통해서 최강이지만 최악의 변호사인, 선과 악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과연 선천적인 악인으로 태어난 것 같았던 그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변호사라는 직업으로, 법과 정의를 수호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인지부터, 법으로 심판 받지 않은 죄는 법 이외의 것으로 심판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으로 정의와 악, 죄와 벌, 그리고 속죄라는 것의 의미에 생각해 보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는 '살인자의 어머니가 살인 혐의로 체포되었다는 사실로 살인 행위의 유전자가 대대로 이어지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극중 미코시바 레이지는 자신이 '시체 배달부'가 된 것이 천성이 아니라 부모에게 기인했을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앞에서 어이없는 소리라며 비웃고 분노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 '마치 같은 선율을 반복하는 윤무곡 처럼' 끔찍한 살인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시체 배달부의 어머니도 살인자일까,라는 미스터리 자체도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있지만, 냉정하고 비인간적인 괴물 변호사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변호할 것인가,라는 법정극으로도 매우 흥미진진했다. 탄탄한 구성과 독특한 캐릭터,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빠른 전개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어 주는 긴장감도 여전했다. 시리즈 다음 작품은 '복수의 협주곡'이라는 제목으로 미코시바에게 늘 싫은 소리를 들어도 그만두지 않고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변호사 사무소의 사무원 요코의 이야기가 그려진다고 하니 매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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