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론도 스토리콜렉터 70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당시 우리 중에 도를 넘은 사람들이 있었어. 언젠가는 대가를 치르게 되는 법이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야.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언젠가는 진실이 드러날 거라고."

"꼭 그렇진 않아. 우리 모두가 계속 입다물고 맞서 싸우면 돼.

슈나이더가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맞서 싸운다고? 미안하지만 승산이 없을 텐데."

"있잖아.... 어제저녁부터 쭉 생각해봤는데, 우리에게 승산이 있을까? 어느 정도 희생을 치러야 이길 수 있을까?"    p.78

안드레아스 그루버의 마르틴 슈나이더와 자비네 시리즈 그 네 번째 작품이다. 전작이었던 <죽음을 사랑한 소년>이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게 된 슈나이더의 충격적인 선택으로 끝이 났었기 때문에, 더욱 그 다음 이어지는 이야기가 궁금했었다. 원래 이 시리즈는 삼부작으로 예정되어 있었다고 하니,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을 파격적인 결말로 마무리했던 것도 이해가 되긴 하지만, 그래서 궁금했던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도 후속작 출간을 요청하는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시리즈가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 그렇다면 과연 무기를 소지하지 않은 사람을 총으로 쐈던 슈나이더는 어떻게 됐을까.

이 작품은 슈나이더가 체포되어 정직 처분을 당하고 9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된다. 슈나이더가 아카데미 교단에 서지 못하게 되는 바람에, 대신 수업을 맡았던 동료가 출장을 가게 되면서 자비네가 여름방학까지 남은 한 달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다. 자비네는 슈나이더의 공판에 주요 증인으로 참석했었고, 이후에는 그와 전혀 만나지 못했다. 만나기는커녕 조언을 구한 적도 없었으며 모든 사건을 혼자서 해결해왔다. 실제로 이 작품의 초반부에는 슈나이더가 사건에 거의 개입하지 않고, 그의 두 제자인 젊은 수사관 자비네와 티나가 주도적으로 수사에 나서는 모습이 그려진다. 거의 300여페이지가 지나서야 슈나이더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으니 말이다. 무모하리만큼 호기심 많고 고집스러운 자비네가 아무리 사건을 재구성하는 능력이 뛰어 나고, 이해할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는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시리즈의 진짜 주인공은 사실 슈나이더이다. 그는 범죄 분석에만 25년 경력을 가진 전문가로, 법의학과 범죄심리학 공부도 했으며 유럽공동경찰기구의 멤버이기도 하지만, 마리화나를 피우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기를 죽이고 스트레스를 주는 독특한 캐릭터이다. 그는 현장에 가서 사건을 다시 분석하고, 사건을 가능한 세분화하면서 마리화나를 피우고 살인범의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수사를 해왔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만큼 능력 또한 독보적이니 말이다.

 

 

당신, 왜 그랬지?

불현듯 그는 이레네와 대화를 나눠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영혼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떠나기 전에 할 말이 있었다. 이레네의 영혼이 아직 방에 있음을 알았다. 게다가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따뜻한 말 몇 마디 해주기를 바란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차갑고 생명이 없는 몸을 이 방에서, 이 집에서, 그리고 이 지역에서 떠나기 전에.    p.409

한 남자가 고속도로 위를 전속력으로 역주행해서 죽는 사고가 발생한다. 단순 실수라고 보기엔 정황상 운전자는 아예 죽으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사망자는 연방 범죄수사국 경정으로 다섯 살 된 아들을 혼자 키워왔다. 대체 그는 왜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 자택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목이 목이 부러져 의문의 추락사를 당한 여자가 슈나이더 대신 수업을 맡았던 안나 하게나의 친언니로 밝혀진다. 그리고 얼마 뒤 안나 하게나는 철로 위에 차를 세워둔 채 자살한다. 이어 만찬석상에서 나와 다리 밑 철로로 뛰어내린 여자, 그리고 욕실에서 자신의 턱을 총으로 쏜 남자 등 자살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는데, 모두 연방 범죄수사국 수사관과 그 가족들이었다. 자비네는 동료들이 연이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자 사건의 발단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슈나이더에게 수년간 지겹게 들어왔던 말처럼, 우연이란 절대 있을 수 없으니 말이다. 무엇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사건을 추적할수록 모든 단서와 연결고리가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이들 모두 20년 전 마약전담반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자비네는 슈나이더에게 도움을 청하러 가지만, 그는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고, 즉각 사건에서 손을 떼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순순히 사건을 포기할만한 자비네가 아니었다. 극중 슈나이더가 자비네에게 "당신은 과거의 작은 다람쥐가 아니야. 야생 고양이가 됐소."라고 말할 정도로 기존 시리즈에 비해 자비네는 이번 작품에서 독립적으로 수사를 펼치기 시작한다. 과연 20년 전 과거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며, 그것은 이유라면 대체 왜 이제야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죽은 수사관들과 슈나이더와의 관계는 무엇이며, 슈나이더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이야기를 읽는 내내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긴장감 넘치는 전개로 페이지 끝까지 달려가는 작품이었다. 특히나 이번 작품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존 시리즈에서 거만하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며 결코 속마음이라고는 보여주지 않았던 슈나이더가 처음으로 조금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무례한 태도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궁금하다면, 이번 작품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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