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스토커 스토리콜렉터 69
로버트 브린자 지음, 유소영 옮김 / 북로드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내가 하려는 말은, 나쁜 놈들은 어디에나 있어요. 세상은 선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만큼 많은 악도 흘러넘치죠. 끔찍한 악을 행하는 사람들.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돼요. 당신이 잡아들일 수 있는 자들. 너무 단순하게 들린다는 건 알지만, 그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덕분에 마음의 평화를 조금 찾았어요."   p.214~215

지역 가정의학과 의사가 자신의 침실에서 자살봉투로 질식사한 상태로 발견된다. 그는 부인과 몇 달째 별거 중이었고, 침대 옆 탁자 서랍에서 게이 포르노 잡지가 발견된다. 하지만 미리 계획된 범행이라는 흔적이 곳곳에 있었고, 아내의 동생은 폭행 죄로 집행유예 중인 말썽꾼이었다. 그의 처남에겐 범행 동기도 있었고, 엄청난 전과에 악당스러운 행동을 일삼는, 가장 용의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 과연 이것은 게이혐오 살인인 것일까, 돈과 부동산을 둘러싼 집안 싸움인 걸까. 그리고 며칠 뒤, 또 다른 피해자가 같은 수법으로 죽은 채 발견된다. 자살로 위장된 깔끔한 살인이었다. 이번에는 영국 텔레비전에서 가장 유명한 얼굴 중 하나였다. 두 사람 모두 약에 취한 상태에서 비닐봉지로 질식사했기에, 정확히 동일범의 소행이 분명했다. 그리고 범인이 남긴 단 하나의 흔적이었던, 문에 찍힌 어린아이의 귀 모양에서 검출된 미량의 DNA는 범인이 백인 여자라고 알려준다. 하지만 에리카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범인이 여자라는 증거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며, 여성 연쇄 살인범은 대단히 드물다고 반박한다. 에리카는 생각한다. 우습지만 범인과 나, 우리 둘 다 여성으로서 능력을 의심받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스릴러에서 흔치 않은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로버트 브린자의 '에리카 경감' 시리즈 그 두 번째 작품이다. 이 시리즈가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주인공에리카 포스터경감이라는 캐릭터에 있다. 에리카 경감은 과거 여섯 명의 소녀를 살해한 공으로 서른아홉밖에 안 된 나이에 경감으로 승진했던 스타 경찰로 주목 받았다. 경찰이던 남편을 작전 수행 중에 잃고 나서 죄책감과 슬픔으로 한 동안 일을 쉬었고, 아직도 그 감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등장하지만, 뛰어난 직감과 올곧은 원칙으로 사건을 파헤치고, 주위의 어떤 방해나 제약에도 굴하지 않고 집요하게 범인을 쫓는다. 여전히 먼저 떠난 남편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범죄 피해자들의 애달픈 삶에 마음이 흔들리는 감상적인 면도 가지고 있지만, 사건 해결을 위해서는 윗선과의 충돌도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강한 면모도 보여 주는 캐릭터이다.

 

"저렇게 작은 여자가 살인범이라는 게 걱정스럽지 않으세요?"

모스가 물었다. "언론에서 뭐라고 쓰는지 보셨죠."

"남자가 저지른 강간이나 살인 사건을 수사한다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는 게 이상해요. 남자는 여자를 강간하고 살해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짓에 별다른 '이유'를 찾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여자가 같은 짓을 했다면, 사회 전체가 발칵 뒤집혀서 왜 그랬느냐, 무슨 이유가 있었느냐, 대대적인 심리 분석이 벌어지잖아요."    p.250

에리카는 사건 해결을 위해서는 윗선과의 충돌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라 승진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럼에도 뛰어난 직감과 자신만의 원칙으로 사건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은 여전하다. 남편이 떠난 지 벌써 2주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를 생각하며 눈가를 훔치는 감정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무모할 정도로 일에 몰입하는 열정과 대담함으로 사건을 파헤치는 그 실력만큼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치 그림자처럼 자신의 정체를 감춘 채 완벽한 살인을 감행하여 언론에서나이트 스토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범인의 정체는 대체 누구일까. 그리고 아무런 단서 하나 남기지 않고 완전 범죄에 가까운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나이트 스토커의 정체를 에리카 경감이 어떻게 밝혀 내는지 이야기는 숨쉴 틈 없이 달려 나간다. 그야말로 한 장면 한 장면 눈을 뗄 수 없는 작품이다.

로버트 브린자의 '에리카 경감' 시리즈는 현재 여섯 권이 출간되어 있다. 재미있는 건 이 많은 작품이 최근 3년 사이에 모두 출간되었다는 거다. 시리즈 첫 작품인 <얼음에 갇힌 여자> <나이트 스토커>, <어두운 바다>가 모두 2016년에 출간되었고, 이후 <마지막 호흡>, <콜드 블러드> 2017, 그리고 2018년 최근에 <치명적인 비밀>이 출간되었다. 이렇게 시리즈 작품이 짧은 기간에 연이어 발표된다는 점만 보더라도, 시리즈의 주인공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현실과 모순에 부딪히는, 외유내강하면서, 섬세하고, 발 빠른 여경감 '에리카 포스터'라는 캐릭터가 살아 숨쉬고 있기에 이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어서 빨리 다음 작품을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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