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이브스 3 - 5천 년 후, 완결
닐 스티븐슨 지음, 송경아 옮김 / 북레시피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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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북극 위 높은 곳에서 전체 모습을 '내려다보며') 묘사하듯, 지름이 84,000킬로미터인, 머리카락처럼 얇은 고리가 30억 명의 인구 전부가 사는 세계였다. 그 중심에 잇는 희고 푸른 행성의 지름과 비교하면 대략 일곱 배였다. 그 고리를 이루는 물체들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커 보이겠지만, 고리의 전체 규모에 비교하면 더없이 작은 입자였다. 최대한 가느다란 보석 목걸이, 여인의 목에 걸린 보일까말까 한 백금의 실을 상상해보라. 그런 목걸이를 지름 10미터짜리 완벽한 원으로 만든 다음 그 전체 크기에 비교하면 실이 얼마나 얇을지 그려보라.   p.34

'어느 날 아무런 전조도, 이렇다 할 원인도 없이 달이 폭발했다.' 에서 시작한 <세븐이스트>가 드디어 3부까지 전 권이 출간되었다. 달의 폭발 이후 1년 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1부에서는 달은 일곱 개의 큰 덩어리와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조각들로 붕괴되었고, 증가하는 유성충돌이 '화이트 스카이'사태로 이어지고, 며칠 뒤 '하드레인' 현상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대통령을 비롯해 과학자들은 2년 안에 최대한 많은 인원과 장비를 궤도로 쏘아 올려야 했고, 노아의 방주와 같은 우주선에 인류를 대변할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을 태워 우주로 보낼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달이 붕괴하고 예상대로 2년 후 하드레인이 시작된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2부에서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명체뿐만 아니라 인간의 문명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인듀어런스 호가 클레프트에 도달하기까지 3년 동안 인구의 대다수는 여러 가지 원인, 즉 우주 방사선, 자살, 암 등으로 사망하게 되었고, 그들이클레프트라고 하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장소에 도달할 무렵 우주에는 단 여덟 명의 생존자만이 남게 된다. 이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이미 폐경기에 접어든 사회학자 루이사를 제외하면 가임기의 인구는 일곱 명, 세븐이브스로 일컬어지는 이들은 유전학 실험실을 이용하여 인류의 재건에 필요한 자원을 보유하고자 한다.

그들 일곱 명의 여자들이 남자 없이 스스로 임신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자손을 이을 수 있는 실험을 하게 되고, 그로부터 5,000년 후의 이야기가 3부에서 펼쳐진다. 5.000년 후, 이제 우주에는 30억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하드레인에서 살아남은 세븐이브스, 그리고 그들에게서 뻗어 나온 일곱 종족. 각 종족을 대표하는 일곱 명이 비밀리에 소집되고 이들세븐멤버는 지구에서 발견된 사람들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1권에서 하드레인으로 지구가 멸망하기 직전 다이나의 아버지가 지하 깊은 곳에 대피한다고 했었는데, 그들이 생존해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잠수함을 타고 바다 속으로 대피했던 이들 역시 생존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5천 년 동안 각기 어두운 광산과 깊은 바다 속에서 삶을 영위해온 두 종족은 사회학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다르게 진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싸움은 방법을 알아서 하는 게 아니야." 타이가 말했다. "결심하기에 달린 거지."

"난 그냥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게 말이지, 5천 년 전 우리 이브들이 내린 결정이 우리 행동을 통제할 때가 있어. 어떨 때는 우리가 무력할 정도지. 너는 뒤로 물러서서 관찰하고 분석하도록 되어 있어."

"당신은 영웅이 되도록 만들어져 있고요."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p.272

이 작품이 과학적 사실이나 법칙에 무게를 두고, 탄탄한 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쓴 '하드 SF' 장르이기 때문에, 사실 쉽게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과학과 테크놀로지가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어 다소 문체도 다소 딱딱하고, 낯선 용어들과 설정 들이 다소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 이야기인 3권은 상대적으로 매우 잘 읽힌다. 물론 앞선 1권과 2권의 과정을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세계이지만 말이다. 닐 스티븐슨은 눈부신 상상력과 천재성으로 인류사를 다시 쓰는 장대한 스케일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행성의 충돌로 시작해 지구가 파괴되고, 세계의 해체와 재건의 시간을 지나 인류의 재탄생이라는 우주 대서사극이 그렇게 만들어 졌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매력은 우주물리학, 양자역학, 로켓공학, 로봇공학, 인공지능, 생물학, 유전공학, 무선전신 및 프로그래밍 언어학, 철학, 문화인류학, 심리학, 정치학 등 방대하지만 검증 가능한 이론들로 무장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 장점이 일반 독자들에게는 다소 어려운 장벽을 제공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꼭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천체물리학자였던 스티븐 호킹 박사는 “2020년까지 화성과 달에 식민지를 세우고 그곳에 노아의 방주처럼 보관 시설을 세워 인류가 살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소행성 충돌의 위험, 지구 온난화와 자원고갈 등으로 새로운 우주 식민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계속 높아지고 있는 요즘, 소행성 충돌을 미리 알기 위한 조사 작업이 활발히 진행 중이기도 하다고 하니, 닐 스티븐슨이 그려낸 세계를 단순히 공상과학소설 속 허구의 그것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류의 멸망과 재건이라는 주제 자체는 SF장르에서 드물지 않지만, <세븐이브스>만큼 높은 과학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은 흔치 않을 것이다. 첨단 과학 기술 아이디어들이 얼마나 매혹적인 스토리를 만나 빛을 발하는지, 꼭 한번 만나보길 추천한다. 이 작품이 제대로 된 과학소설의 세계로 안내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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