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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들렸습니다.

이것저것 하느라 조금 바쁘게 살았던 것 같아요. 어느새 2016년이 되었고 힘들었던 적응기간, 1학년도 끝났습니다.

 2학년이 되었고 입학할 후배들의 얼굴도 봤고, 후배들을 위해 반도 2학년층으로 다 옮긴 상황입니다. 몇 달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참 많은 것이 변해있는것 같습니다. 물론, 학급 친구들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저희 과는 3년 내내 같은 반이 거든요 ㅎㅎ.

 

 좌절하고 낙담하고 힘들어 할 시간이 조금 줄어든 2016년을 보내게 되길 바랄 뿐입니다.

 

 요즘 졸업식과 입학식 연습에 정신이 없습니다. 전 저희학교 기악반에 속해 있는데, 연습량이 장난 아닙니다. 1,2,3학년 모두가 참여하는 유일한 연주인 졸업식 연주를 위해 1학년들은 밥도 못 먹고 매점에서 때운 뒤 3시 30분까지 연습을 진행해야 합니다. 3학년 선배들이 있어서 연습 중간중간 농땡이도 못 쳐서 2시간 30분 내리 연습을 하고 나면 진이 다 빠집니다.

그래도 첼로를 엄청나게 못하던, 그렇게 오랜 배운 것 치고 지나치게 못 하던 또 악기를 싫어했던  제가 아직까지도 악기를 잡고 있고, 그걸로 봉사도 하고 동아리도 하고 공연도 한다는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중학교 1학년때까지 연습을 안하는 절 구박구박하시면서 가르치시던 첼로 쌤이 아시면 엄청 놀라실 것 같은데, 번호가 바뀌신 것 같아 연락을 못드려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ㅎㅎ

 

신입생중에 맘에 드는 아이가 있으면 꼬셔볼라고 살을 빼고 있습니다. 야식을 끊었습니다!! 지금 4일째인데 부디 살을 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요즘은 영어 공부를 나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때 ABC를 떼고 중학교 1학년때 문장엔 동사가 하나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던 저는 저희학교에서 영어 고자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정말 지나치게 못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얼마나 공부를 안 하면서 살아 왔던 것인지 공부를 조금 많이 했더니 머리며 허리며 눈이며 입이며 입 안이며 성한곳이 없었습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요.

아무튼 영어는 너무 어려워요.

 

 제 친구들은 독일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합니다. 독일어 포기의 대명사인 저는 그 시험을 준비하지 못합니다. 뭔가 좀 기분이 그래요 ㅎㅎ... 아무리 그래도 '포기'라는 건 좀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내색은 안하지만 하하하

 

 내일 6시에 일어나야돼서 자야합니다.

 

 오랜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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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sang 2016-02-15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이미륵에 관심이 간다. 문학을 좋아하고 즐기는 나로서 한국과 독일을 연결시켜주는 가장 단단한 고리가 바로 이미륵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미륵의 도서는 압록강을 흐른다.’정도를 제외하고 거의 읽지 못했지만 그의 문체는 상당히 매력적이고 맑고 순수하다. 지난번 전공어 탐구 보고서를 위해 이미륵 작가에 대해 알아보고, ‘압록강은 흐른다.’를 다시 들추어 보기도 하다가 그만 이미륵에 대해 관심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샘솟았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이루지는 못했다. 대신, 독일과 나의 연결고리인 이미륵씨의 평전을 샀다. 지금, 나는 독일에서의 이미륵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내가 물론 그 유명하다는 독포자이지만 평전 사이사이 한국어와 함꼐 등장하는 독일어는 반가웠다.

 

 

본명 이의경인 이미륵작가는 유럽행 유학길에 올랐다. 함꼐 유학을 시작한 친구들은 대부분 프랑스에 남았으나 이미륵은 독일행을 택했다. 독일경험이 있는 안봉근의 권유로 머무르게 된 것이다. 이의경이 독일에 도착해 여유있고, 무료한 삶을 즐긴지 1달정도, 조선에서는 이의경에게 출판법 위반으로 2년형을 내린다. 이로인해 그는 조선과의 서신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어, 이방인의 고독은 날로 깊어져만 갔다. 이미륵은 독일에서도 한국의 독립을 위해 글도 쓰고 열심을 다했다. 세계 피압박 민족 대회에서 태극기를 걸고 조선의 독립을 확정지어 달라고 목소리를 내었지만 그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못했다.

 

나는 이미륵의 삶을 통해 당시 독일의 모습과 조선의 모습을 동시에 살펴 볼 수 있었다. 세계 1차대전에서 패배를 안고 배상금을 물어내기 위해 독일은 화폐의 가치를 엄청나게 낮춰야 했다. 192310월 미화 1달러가 독일화폐 120억 마르크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환율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과잉 인플레이션에 빠지고 만 독일을 많은 한국 유학생들은 떠났고, 이미륵은 홀로 외롭게 버텨야만 했다. 한차례의 엄청난 고독과 힘겨움을 겪은 이미륵은 변화를 추구하기 시작했고, 여러차례의 이사를 감행하게 된다. 하이델뷔르크 대학에서 의학과정을 밟기도 했고, 뮌헨에서 학위과정을 밟기도 했다. 잠시 달콤한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독일의 인플레이션은 그에게 많은 변화를 선사했다. 독일의 경제 위기 속에서 이방인인 이미륵이 직업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과제였고, 학위 과정을 끝낸 뒤에는 장학금마저 맞을 수 없어 엄청난 가난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엄청난 가난은 그가 의사에서 작가로서의 삶을 살게 하는 계기가 된다.

 

가난했던 그는 3명의 가난하지만 정신적 부유를 추구하는 독일 친구들과 함께 기숙을 하게 되고 이들과 함께 지내며 육체적 곤궁을 정신적 가치로 승화 시키며 활기찬 삶을 살아갔다. 그들의 평범치 않았던 일상은 예술로 숙성되었고 그가 아르츠바하에서 3달간의 휴식을 취한 뒤 뮌헨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에는 원고뭉치가 들려 있었다. 그의 내면에서 들려 준 이야기를 쉬지 않고 받아 적어 내려간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작가의 길을 걸었다. 1931년 동물학 박사에서 작가의 길로 선회한 그는 그의 대표작 압록강은 흐른다를 출간해 독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독일의 신문사들은 찬사를 쏟아내었고 심지어는 올해 독일어로 쓰여진 가장 훌륭한 책은 외국인에 의해 발표되었는데, 그가 바로 이미륵이다.’라는 기사까지 나왔다.

 

한국인인 내가 보아도 아름다운 소설이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였다. 독일인의 눈에 비친 압록강은 흐른다는 얼마나 아름다웠고 신비로운 이야기였을지 짐작이 간다. 내가 이미륵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소설 속 순수함 때문이다. 그가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그의 삶을 통해 그가 다른 한국의 작가들과 달리 어리고 맑은 글을 써 낼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가 일제의 치하 아래서가 아닌 한 발자국 밖인 타국 독일에서 조선을 기억하고 추억했기 때문이고, 그가 글을 시작한 계기가 그의 피 속에서 끓어오르는 문학적인 욕구때문이었기에 그의 글은 때묻지 않고 상처받은 글이 아닌 맑고 깨끗한 글일 수 있었다.

 

진로학술동아리를 통해 일제치하당시 조선의 소설들을 살펴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대부분 비판적이고 슬프고 어둡고 반항적인 내용의 소설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그 시대에 조선을 아름답게 한 장의 사진처럼 남겨준 소설을 써 준 이미륵에게 감사했고, 타국에서 한국이란 나라를 기억하고 찬사를 받게 해준 그에게 감사했다.

독일의 작가, 그리고 조선의 작가인 이미륵. 그는 문학평론가의 꿈을 키우는 내가 독일에 관심을 갖게 해준 첫 번째 열쇠고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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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래 2016-02-05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십니까?
선생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이미륵박사기념사업회(www.mirokli.com) 유족대표인 李榮來 (010-2228-1470. 032-815-1950)입니다.
선생님과 통화를 했으면 합니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입니다.
저는 어제 밤 영어 스피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요번 스피치 주제는 한 사람을 정해 그 사람을 김념하는 일종의 축사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 서거 6주년을 마지하신 전 '노무현 대통령'님의 서거 10주년을 기념하는 스피치를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스피치를 쓰기위해 참 오랜만에 네이버에서 노무현 대통령님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었고, 나름 이것저것 할 것이 많아 네이버나 다음에서 무언가(특히 정치적인 것)를 검색해 본 것이 참 오랜만 이었습니다. 아직도 노무현을 잊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올려놓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자취도 읽어보고, 2009년 당시 노무현대통령을 추모하는 동영상들도 보았습니다. 마음 한켠에서 한 인간에 대한 감동과 대한민국에게 민주주의를 선물한 그에 대한 감사함이 올라왔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심이 담겼던 목소리에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민주주에 대해 생각했고,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도래를 도운 노무현 대통령님꼐 다시 감사했습니다. 영어 스피치에서는 왜 이사람을 기념하기로 마음먹었는지를 꼭 써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라고 썼습니다.

스피치를 쓰고 난 뒤 좀 쉴겸 페이스북에 들어갔습니다. 스크롤을 내리는데 하얗게 눈 덮인 사진들이 있더군요. 벌써 눈이 내렸구나, 참 예쁘게 내리기도 했네. 이 생각을 하고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올해는 첫눈이 좀 빠르다고 생각하면서요. 그러나 모두가 아시겠지만 그것은 눈이 아니었습니다. 어제 페이스북에서 보았던 하얗게 덮인 거리의 사진들은 눈의 것이 아닌 최루탄의 것이었습니다.

저는 올해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고등학생이란 이유로 매일 저녁 보던 뉴스를 안 본지도 오래되었고, 아침마다 보던 신문을 안 본지도 오래되었씁니다. 심지어 인터넷으로도 기사를 찾아본지도 오래되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때, 세월호 사건에 그렇게 분노하고, 울었음에도 결코 잊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세월호를 잊은지 오래 되었었습니다. 대학교 입학처들에서 단원고 특별전형을 보며 '와 얘네들은 개이득이네.'라고 생각했지, 다시 세월호를 떠올리고 기사를 찾아보려는 시도 따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고등학생이었고, 바빴기 때문입니다.

정정하겠습니다. 저는 고등학생이란 이유로 뉴스를 보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저는 고등학생이라는 '핑계'로 뉴스도 신문도 수많은 기사들도 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이 국가가 어떤지경에 이르고 있는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하고 비판하는 것은 의무인데 바쁘다는 핑계로 그 의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2015년들어 일어난 일들중 아는것은 '메르스' 그리고 '북한 사격'정도가 다 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보고 저는 '나라꼴 하고는'하며 인터넷 창을 꺼 버렸고, 저의 안전과 안녕만을 걱저했을 뿐이었습니다.

국정화 교과서 논란이 일고있습니다. 가장 분노해야할 고등학생인 저이지만 이 논란에 대해서도 제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지 않나?, 나라가 미쳐가는구나.'라는 짧은 비판을 속으로만 하고 또 그렇게 인터넷 기사 창을 꺼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어떤 꼴이되고 있고, 어떤 지경에 이르고 있는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어제 페이스북을 보고 알았습니다. 제가 너무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이 그토록 어렵게 얻어낸 민주주의를 이렇게도 쉽게 잃어버리고 있는데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어떻게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입니까? 민주주의 국가라면 어떻게 국가의 주인을 향해 최루탄이 섞인 물대포를 쏘고 피를 흘리게 할 수 있습니까. 더 이상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닙니다.

차벽을 세우고 최루탄이 섞인 물대포를 민간인에게 쏘았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머리 속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해낸 시위 진압 방법일 수 있습니까. 놀랐습니다. 이명박 정권때,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는 장면으로도 충분히 두려웠고,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물대포에 최루탄을 섞었습니다.2015년 대한민국 정부는  군사독재시절에도 사용하지 않은 것을 사용해 시위대를, 국민을 진압했습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들이었습니다. 하얀 가스가 날리는 곳에서 주인공이 켁켁거리고 가스가 눈에 들어가 눈을 비비고 그러나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고. 그것을 2015년 대한민국에서 보게될 줄은 꿈도 못 꿨습니다. 물에 섞인 최루탄은 날아가지도 않습니다. 군사정권 시절보다 더 무서운 2015년의 대한민국입니다. 3층 차벽은 최루액에 맞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움에서 빠져나갈 곳도 없게 만들었습니다.

현 정권에게 분노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던 것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일이 잘못된 일입니까? 국민들은 자신의 국가에 대한 목소리를 낼 권리도 없습니까? 제가 고등학생이라 아직 어리고 아는게 없을 수 있지만, 제가 배운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에게는 정부를 비판할 권리가 있습니다. 왜 국민이, 한 국가의 주인이 그 국가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두려워 해야 합니까?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제 친구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낼때 '이러다가 잡혀가겠다.'라고 걱정을 해야하는지. 또 이글을 쓰면서, 이 글을 올리면서 저 스스로의 마음 한켠에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시위에 대해 시위대가 잘못했다고 비판하더군요. 오랜만에 대한민국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고 기사도 여럿 읽어보고 다양한 사람들이 쓴 글과 댓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어느 쪽에서는 시위가 불법 시위였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시위 진압이 불법이었다고 했습니다. 모르겠더라고요, 누가 위법인지 아닌지. 시위대를 옹호하는 글에서 시위대가 불법시위를 했으니, 시위대의 잘못이다, 아니다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데 참으로 어이가 없을 뿐이었습니다. 그 시위가 불법이었는지, 불법이 아니었는지가 중요합니까? 저는 그 시위가 위법이고 자시고 보다 민간인을 향해 최루탄과 물폭탄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이 국가에 놀랐을 뿐이고 이 정권에 분노했을 뿐입니다. 물론 감정에 북받쳤던 시위대가 진압 경찰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어떻게 경찰이 민간인에게 최루액을 쏠 수 있습니까.
'경찰에겐 1도 잘못이 없지않냐?'라고 말하는 국민들이 더 무서웠고, '썰매 재미있게 탄다'고 이야기한 일베가 더 무서웠습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저는 매우 무서웠고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대해 경악했고, 이 현실이 안타까웠다가 원망스러웠다가를 반복했습니다. 기사를 볼때마다 허탈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무서웠던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가 정말 너무 소름끼치게 무서웠던 것은 이 광화문 시위에 대한 보도가 KBS MBC SBS이 삼사 그 어떤 곳에서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언론이 통제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까지 침묵할 줄은 몰랐습니다. 차벽을 3중으로 쌓아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바깥에선 그 누구도 알 수 없게 하고, 언론도 입을 닫고 보도를 하지 않음으로써 또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자 했습니다. 무섭습니다. 경찰이 사람의 생명을 위독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기자는 그것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언론은 잠잠합니다. 광화문은 지옥이고 사람들은 다치고 피가나고 있는데 가장 먼저 분노하며 국민들의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할 방송국들이, 기자들이, 앵커들이 잠잠합니다. 광화문에 있던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그 차벽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트위터와 페이스북만이 떠들었을 뿐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의 언론은 페이스북보다 믿을만 하지 못합니다.

처음에 제가 기자의 꿈을 꾼 이유는 글쓰는게 좋아서 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는 것이 좋았고, 글이 좋았었습니다. 축구가 좋아서 스포츠 기자가 되고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순간 그 목적이 바뀌어있었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글이 좋고, 기자가 멋지고, 무언가를 알아내는 것이 멋있어서 기자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기자로서 '기자'의 의무를 다하고 싶어서, 국민들의 알 권리를 보장해 주고 싶어서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기자라는 꿈이 날이 가면 갈수록 확고해져 갑니다. 이 사회가 제가 악착같이 기자라는 꿈을 꾸게 해주는 것에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가나보다 언론의 자유가 없는 국가가 대한민국이고, 이 통계자료가 틀리지 않다는 것을 이렇게 깨닫게 해주는 군요. BBC에는 방송이 되는 광화문 시위 사건을 대한민국의 대표언론사들은 침묵한다는 것이 흥미로울 뿐입니다.

페이스북에서 'Pray for Paris'라면서 사람들은 프랑스 테러를 추모하며 프로필 사진에 프랑스 국기를 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Pray for France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Pray for Korea 입니다.

'정치가 썩었다고 고개를 돌리지 마십시오. 낡은 정치를 새로운 힘으로 바꾸는 힘은 국민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광화문 사건은 인터넷으로 접하기 전 읽은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입니다. 고개를 돌리지 않을 것입니다. 도대체 어디까지 역행할지 모르겠는 정치이지만 저는 대한민국의 국민,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주인,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기 때문에 고개를 돌리지 않고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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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sang 2016-02-15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annsang 2016-02-15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는 현재의 대한민국인 더 나빠졌습니다. ㅠㅠ
 

신입생 여러분들, 무슨과 갈까~ 고민 중이 시라면 답은 독어과입니다. 특히 내가 AA11이다! 라면 더 깊은 생각할 필요가 없지 않나 싶습니다. 저도 대일외고를 생각하면서 무슨과를 가야할지 고민을 했고, 그 선택의 결과가 바로 독어과 였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매우 현명했다고 자부합니다. 우선 킹왕짱 독어과는 남녀 비율이 1:1!! 이화외고가 아닌 대일외고를 선택한 여학생 여러분~ 남녀공학을 선택했으면 남자가 있는 교실에서 공부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학생 여러분,' 아~ 그럼 독어과는 여자가 적겠구나? 그럼 난 여자가 많은 불어과 가서 청일점이나 해야지~' 이생각 하고계신가요?
아니죠. 그곳에는 남자의 인권이 없습니다. 대일외고에서 유일하게 남자가 교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날이 정해져 있는 학급. 바로 독어과 입니다. 남학생들이 남학생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왜냐 1:1이니까. 그리고 남자 동지여러분 축구 중요하잖아요. 한반에 남자가 3명 이래봐요 어떻게 축구할거예요. 14명씩은 있어야 축구도 하고 야구도하고 농구도 하고 그러죠!!
자 그리고 독어과는 단합력이 장난 아닙니다. 그냥 매년 그래왔습니다. '독어과'를 선택하는 아이들의 특징이랄까요. 밝고 활기차고 '다같이' 놉니다. 정말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습니다. 소심하더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소심했던 아이들도 다 즐겁게 다같이 생활하고 있으니까요.
정말 끝내고 싶어도 끝낼 수가 없네요. 독어과는 과내 동아리가 있는 유일한 과입니다. 원래는 모든 과들에 과별 동아리가 있었는데요, 이제는 독어과의 '리베'만이 살아남았습니다. '리베'는 독일어 연극동아리로써 독어과의 다수가 '리베'동아리의 일원이 되어있는데요, 요번에 열린 전국 독일어 연극대회에서 1등을 했답니다!! 쩔어쩔어~
독어과는 공부도 잘해요!! 모의고사에서도 영어과와 언제나 순위를 다툰답니다!! 독어과 2학년 선배들은 독보적으로 공부를 잘하시고요!! 독일어는 어떻냐고요? 전혀 어렵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멋지다는 건 보장할 수 있습니다. 막 인터넷에 영상들 돌아다니는 것처럼 그렇게 강하지는 않고요. 정말 멋있을 정도의 강세를 가진 언어입니다. 어디나가서 독어 하면 '오오오~~' 하는데 조금 뿌듯하달까요 ㅎㅎ 게다가 독어과는 '외국어의 실생활화'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과입니다. 일상생활에서 관용어들처럼 독일어를 사용하는데 서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독일어가 자연스럽답니다. 얼마나 독일어를 많이 쓰고 다니는지 다른 과 친구들도 다 독일어 몇마디씩을 알고 있답니다.
전공어 선생님들도 좋고 선후배간 관계도 좋고 너무 좋은게 많은데 이정도로 자랑을 마칠까 합니다. 제가 면접 질문으로 '독어과의 장점을 3가지 이야기해보라.'는 걸 받았었는데 독어과에 대한 정보가 없이 면접에 임했던 터라 받은 질문들 중 가장 답변을 형편없이 했었습니다. 이런 면접 질문을 대비하실때 참고하시라고 좀 길게 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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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 2015-11-12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이게 복사해서 붙인거라 좀 이상하게 붙여지는 감이 없잖아 있네요
혹시 볼 대일외고 지원자들을 위해서 올려보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