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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보낸 한 시간 - 성폭행과 그 이후의 삶을 그린 실화
칼린 L. 프리드먼 지음, 이민정 옮김 / 내인생의책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처음에 책의 제목을 보고, 로맨틱한 이야기를 상상했었다. 아무래도 파리하면 사랑의 도시라는 느낌이 강해서인 거 같다. 그리고
‘성폭행과 그 이후의 삶을 그린 실화’라는 부제를 보곤 잠깐
멈칫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도 대학을 입학하고 소중한 친구와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한 첫 해의 유럽 배낭 여행의 마지막 여행지인 파리에서 그녀의 운명이 바뀌었다는 것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1990년 8월 1일 밤, 그녀는 평생 그 날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를 성폭행 한 남자는 낯선사람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파리에서
만나기로 한 옛 애인의 조금은 먼 친구라고 할까? 어쨌든 그런 연결의 끈이 있었다. 옛 애인이 약속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은 터지고 말았다. 전에
범죄수사드라마에서,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는 경고가 도리어 위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난다. 실제로 범죄는 낯선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벌일 확률이 큰데, 그런
경고는 도리어 사람의 시야를 좁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사람을 조심해야 하는 세상이 문제이지만
말이다.
식칼로 협박을 하는 남자에게서 겨우 탈출을 하고 신고를 하고, 조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그녀는 그 시간이 마치 자신의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거 같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그 상태가 상당히 오래 지속된 거 같기도 하다. 성폭행을
당했던 기억을 분리시키려는 것은 어쩌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존전략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녀 역시
자신이 관심있어하던 학문을 공부하고, 석사를 넘어 박사학위까지 받은 후, 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하게 된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술과 약이 그녀의 내면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렇게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한 상담가의 도움을
통해 은폐가 길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역설적이겠지만, 그런
일을 당한 사람 역시 자신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사랑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20년이 흐른 후에는 파리의 그 곳을 다시 찾아, 그 사건 역시 과거의
일로 흘려 보내고, 자유로워졌음을 자축하게 된다. 사실 리뷰
제목을 바꾸려다 그대로 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녀에게 그 시간은 그냥 한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온전히 그녀의 힘으로 다시 파리를 빛의 도시로 기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숨긴다고 해서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침묵이 개인에게도 나아가서 사회에도 치유책이 될 수 없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