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재 이상설 평전 - 독립운동의 선구자
김삼웅 지음 / 채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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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재 이상설, 나 역시 이 이름이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의 평전을 읽고 나니, ‘독립운동의 선구자라는 부제가 붙은 것이 너무나 이해가 되고, 그가 어떤 인물인지 몰랐다는 것이 조금은 머쓱하게 느껴졌다. 하기야 이런 경험이 낯선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자들>를 읽으면서도 얼마나 낯선 분들이 많던지 말이다. 그래도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들이 좋은 책들을 펴내서, 그 분들이 펼치고자 했던 뜻과 활동을 만날 수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20세가 넘으면서 이미 학계에서 이름을 날렸던 이상설은 당대의 석학인 이건창에거 율곡 이이를 조술祖述할 학자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조선의 마지막 과거인 갑오문과에 합격했던 그이지만, 그가 살아가던 조선은 이미 국운이 기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현실에 순응하지 않았다. 독학으로 외국어를 익히고 신학문을 연구하며 시대의 변화에도 민감했던 이상설은 1905년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압으로 체결했던 을사늑약에 부당함을 밝히기 위해 앞장섰다. 고종에게 을사늑약을 막지 못하면 차라리 자결을 하라는 상소와 함께 을사오적을 처단하라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고, 이 조약이 갖고 있는 의미를 국민들에게 알라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 이상설은 사직서를 내고, 민족교육을 위해 앞장선다. 이후 1907년 고종의 뜻을 받아 이준, 이위종과 함께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지만, 일본의 방해로 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한다. 하지만 각국의 대표들에게 호소문을 나눠주며 조선의 입장을 설명하려 애쓴다. 이를 이유로 궐석재판을 통해 사형이 선고되고, 그는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신학문 민족교육 기관인 서전서숙을 만들고, 독립운동단체와 최초의 망명정부인 대한광복군정부를 세우는 등,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활동한다. 독립운동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다 48세의 나이에 순국한 그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은 와중에도, 이렇게 평전이 나온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이 망해가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지만, 불의에 항거했던 조선의 관리로서의 이상설의 책임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교육자로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이상설을 만날 수 있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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