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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 - 잃어버린 역사의 현장에서 100년 전 서울을 만나다 ㅣ 표석 시리즈 1
전국역사지도사모임 지음 / 유씨북스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성장했다. 하지만 <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를 읽으며, 내가 살아간 시간과 100년전 경성에서 흐른 시간 사이에 연결점이
많지 않다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던 이면에는 역사의 연속성이 흐려지는 문제도 있지 않나 한다. 그래도 아직 서울에는 39개의 표석이 남아 있다. ‘역사 문화와 관련한 어떠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일정한 표시를 해놓은 것’을
표석이라 하는데, 이를 중심으로 12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극장 길, 기생 길, 문인
길 까지만 해도 무난했다. 친구들이랑 놀러 많이 갔던 곳이기도 해서 더욱 익숙해서 그런 것 같다. ‘천하지만 특별한 그녀’라고 불리던 기생, 해어화解語花라 불리며 양반들과 풍류를 즐기는 교양인으로 대접받던 시절도 있었다. 시대가 급변하면서 그녀들의 삶 역시 변화해갔다. 특권층의 문화에서
대중 곁으로, 그리고 전문 연예인으로 나아가 여성 예술인으로서 자리를 잡은 그녀들은 여성으로서의 지위
향상을 위해서도 노력을 했다고 한다.
공원의 길 정도로 접어들면서,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큰 희생이 뒤따랐는지가 자꾸 생각이 났다. 한때는 조선 왕실의 묘역이었던 효창공원은 청일전쟁부터
시작하여 광복 후까지도 수난을 받아야 했다. 효창공원에는 임시정부 요인과 유해를 찾으면 안장하기 위해
준비된 안중근 의사의 빈무덤을 비롯하여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등의 삼의사, 김구의 묘까지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때는 이
곳을 참배가는 시민들을 막아 ‘도둑 참배’가 벌어지기도 하고, 박정희 정권 때는 이 곳에 골프장을 건설하려다 저지당한 일도 있다고 하니 참 아쉽기만 하다.
그리고 열번째 소개된 의열투쟁 길을 시작으로 상흔길, 애국지사 길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지만, 잊고 있는 사건과 인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많이 메모를 해둔 부분이기도 하다. 100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삶의 많은 부분은 그들의 희생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