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잘 알려진 화가들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전시회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여행 중에 미술관을 찾아야 한다.
확실히 경험할 수 있는 양이나 폭이 작다보니, 감상전에 미리 많은 자료를 찾아보곤
한다. 그런데 <서양미술사의 그림 vs 그림>은 도리어 그런 부분이 아쉽다고 한다. 작품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그럴 때도 있다.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진짜 작품과 관람자 사이에는 일단 사진기가 끼어 들어와
있다. 그래서 크기에 당황할 때가 있었는데, 그러다보면
작품을 보기보다는 실제로는 저렇게 컸네, 혹은 작았네라는 생각에 먼저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매우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일단 사진복제로도 효과가
덜해지는 회화중에서 비슷해 보이는 작품을 나란히 배치해둔다. 화가에 대한 소개도 제일 뒤로 미뤄두고
있어서, 화풍으로 알아볼 수 있었던 몇몇 화가를 빼고는 정말 아무런 정보 없이 작품을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베르메르의 ‘포도주 잔을 든 소녀’를 보고는 나는 소설 ‘게이샤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림으르 소개하며 화가의 전작인 ‘뚜쟁이’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맞아 나는 그런 느낌으로 접근했다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아마 그림에 대한 소개를 먼저 읽었다면 내가 느낀 감상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작품과 함께 소개된 것은 마네의 ‘카페에서’이다. 정면으로 화가 혹은 감상자를 바라보고 있는 여성이 먼저
시선을 사로잡지만, 그림속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배경이 되어주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공통점이기도
하다.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만 정말 극명하게 다르게 느껴졌던 작품도 있었다. 바로
‘빗장’vs’실내’이다. 프라고나르의 ‘빗장’은 더욱 격정적인 느낌을 주지만, 이상하게 내 시선은 드가의 ‘실내’에 멈춰 있었다. 정적인 그 공간에 드리운 무게감에 나마저도
끌려들어가는 느낌이랄까? 화폭에 팽팽하게 담겨 있는 긴장감때문인지 이 작품을 보러 필라델피아로 떠나고
싶을 정도였다. 아마 '실내'만 봤으면 이렇게까지 강한 끌림을 느끼지는 못했을 수도 있다. 그림과 그림을 함께
보면서 느끼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두 작품 다 밀실안에 있는 남녀를 포착해냈는데,
‘실내’는 정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기도 했다.
내가 생각한 상황은 책에서 제시한 것들과 또 달랐는데, 그런 것이 미술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