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용도 (양장)
니콜라 부비에 지음, 티에리 베르네 그림, 이재형 옮김 / 소동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53년에서 1954년 사이에 글을 쓰는 니콜라 부비에와 그림을 그리는 티에리 베르네는 피아트 토롤리노라는 자동차를 타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 제네바, 유고슬라비아, 터키, 이란, 파키스탄을 거쳐, 아프가니스탄의 카불로 떠난 그들은 자신들의 다짐처럼 오직 느림이라는 가장 소중한 사치를 맘껏 누리고, <세상의 용도>라는 책에 담아냈다. 처음에는 제목이 조금 독특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에서 빈둥거리며 나태를 부리는 것만큼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라는 글귀가 가장 그러했고, 또한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보다 더 좋은 제목이 없겠다 싶기도 하다.

처음에는 1950년대라는 시간적 그리고 공간적인 배경에 흥미를 가졌다. 그러나 이 책은 이국적인 풍경을 담아낸 여행서라고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티에리 베르네는 선화(線畵)를 그리는 화가이다. 그의 그림은 니콜라 부비에의 글과 너무나 잘 어울렸지만,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여행서의 삽화랑은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또 어떤 면에서 보면 이국적인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그들이 경험한 모든 것들을 아주 느리고 섬세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나 역시 오직 느림이라는 가장 소중한 사치를 누릴 수 있기도 하다. 전에 어떤 사람이 고흐의 그림을 보고, 그가 비록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저렇게 아름다운 밤하늘을 가슴에 담고 있었다는 것이 자신은 너무나 부럽다고 이야기 한 것이 기억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작가들도 참 부럽다. 그들이 바라본 세상은 아름답고 또 정겨웠기 때문이다. ‘정겹다라는 표현이 정말 딱 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사람냄새가 난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이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유독 기억에 남기도 하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오락 문화에 물들 대로 물든 우리의 감수성을 되살리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 말을 읽으며 얼마나 웃었던지? 1950년대에 느림의 미학을 말하는 것도 200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문득 고대 그리스 유적에 요즘 애들 버릇없다라는 낙서가 남겨져 있다는 것이 떠오르기도 했다. 처음에는 시간여행을 기대했던 책인데, 도리어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참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에 더욱 빠져들기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