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돈에 파는 듯한 기분’이라는 생각이 든 순간 몸이 굳었다. 일하는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계약직으로 고용한 회사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역겨웠다. 시간을 팔아 번 돈으로 음식물과 전기, 가스와
같은 에너지를 고만고만하게 사들여 겨우겨우 살아가는 자신의 불안한 삶이. 앞으로도 그래야만 한다는
사실이. (14,15p)
소풍보다 설레는 시간이 소풍 가기 전날이라고 하지 않는가? 화장품 공장에서
단조롭기 그지없는 라인 작업을 하며 어느 순간 그냥 자신이 라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나가세 유키코는 공장에서 보내는 1년의 시간을 그렇게 변화시키려 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쉬는
시간 우연히 보게 된 광고전단지에서 그녀는 자신의 1년치 연봉과 세계일주 크루즈 여행 비용이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시간을 돈에 파는 듯한
기분’이 아니라, ‘크루즈 여행을 위한 1년’을 만들기로 결심을 한다.
공장에서 주는 돈은 오롯이 저축을 하고, 알바로 버는 돈으로 생활하기로 결심하고, 어느새 수첩을 꺼내 그날의 지출을 하나하나 기록해나가는 나가세에게는 세명의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친구가
있다. 잠시지만 자신의 딸과 함께 나가세와 살아가게 되는 리쓰코도 있고, 나가세가 알바로 일하는 가게의 주인인 요시카도 있는데, 이상하게
내 눈길을 끈 것은 소요노이다. 큰 이유는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선택했던, 그리고 어느새 함께 어울리던
무리와 멀어졌던 친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꼈던 불만은 나가세나 요시카의 감정과 닮아
있었지만, 그 친구의 마음은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결국 크게 보자면 다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소요노는 자기가 먼저 집이나 이웃 이야기를 한다. 처음부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나가세나 요시카에게 그때그때 어떻게 지냈는지 묻지만,
결국 시어머니를 따라 연극을 보러 갔지만 눈치를 보느라 피곤했다느니 인테리어를 바꾸었는데 커튼 색을 잘못 골라 우울하다느니 하는
이야기로 빠진다. (36p)
소요노에게 ‘라임포토스’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잎을 보며 즐기는 관엽식물인데, 물만 있으면
잘 자라나서 그녀가 즐기는 몇 안 되는 오락거리나 마찬가지다. 생활비를 아껴야 해서인지 혹시 먹을 수
없을까 고심했지만, 독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실망하여 잠시 멀리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키워나가기 위해 빗물을 모을 수 있는 물탱크를 구입하는 것을 보면 참 담백하고
솔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런 그녀였기에,
전에 다니는 회사에서 상사의 괴롭힘을 받고 퇴직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녀가
그때 사귀었던, 도움은 안되었던 남자친구의 말처럼 넘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책에는 ‘라임포토스의 배’
뿐 아니라 ‘12월의 창가’라는 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둘 다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일을 소재로 쓰여지는 ‘사소설’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녀가 목표한 돈을 다
모았다고 해서 마치 드라마처럼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속에서 부쩍 마음이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페달에 발을 얹고 내리막길을 달리면서 목표 금액을 모은 기념으로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비에 발이 묶이기 전에 역 앞으로 돌아갈 수 있을 듯 했다. 몸이
이 정도로 움직이는 감각은 몇 년 만에 느껴보는 것이었다.
(11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