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감각 수용기 중 70퍼센트가 모여 있는 것이 시각이지만, 또 그래서 사람들은 시각에 너무 많이 의존하다가 다른 것들을 놓치기도 하나보다. 그래서 나무 인문학자인 고규홍이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인 김예지와 함께 흥미로우면서도 감동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바로 ‘잘 잘라진 나무를 매일 만지고 두드리는
사람’이지만, 안내견에 도움으로 세상을 걸을 때는 나무가
그저 하릴없는 장애물로 느껴지는 김예지와 함께 나무를 더욱 깊이 만나는 여정이다. 그녀의 집에서
가까운 숙명여대 캠퍼스에서 능소화 꽃 무리를 만나며 시작하여, 포도의 풍성함과 밤송이의 강렬함이
함께했던 그녀의 여주 시골집, 그리고 직접 분갈이를 하며 나무의 뿌리를 만져볼 수도 있었던 아름다운
풍경의 수목원과 높이 25미터 규모의 오가리 느티나무가 자리잡고 있는 괴산까지…… 그리고 1년여에 걸친 나무여행을 그녀의 음악 속으로 녹여내는
과정을 함께하는 것은 푸르른 숲을 걷는 것처럼 청명하게 느껴졌다.
"한 생애를 마친 열매는 아주 단단해요.
그리고 새로 다음 생애를 시작하려는 꽃봉오리는 말랑말랑하네요. 꽃봉오리 안쪽에는 틈이
많은가 봐요. 새 생명을 탄생시키려면 그런 틈, 여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년 봄에 피울 꽃을 준비하고 있는 목련을 만져보던 그녀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냥 눈으로 코로 즐기기 쉽지, 손으로 직접 만져볼 생각은 많이 못해서인지, 더욱 그런 느낌이 궁금했다. 나 역시 너무나 좋게 읽었던
책이고, 김예지를 더욱 잘 이해하게 해주고 또한 만지는 것으로 그 규모를 파악하기 힘든 오가리
느티나무를 김예지에게 소개하고 싶었던 고규홍에게 영감을 주었던 책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가 있다. 그 책에서 “무언가를 만진다는 것은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 말에 공감하게 만드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록 시각은
사라졌지만, 청각으로 후각으로 또 촉각으로 더욱 풍부하고 섬세하게 세상을 만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피아니스트 김예지가 슈베르트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었기 때문이고, 자신이 연주를 함으로써 삶의 다양성까지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경험을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처음에는 나무 인문학자의 가이드가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지만,
금새 두 사람이 서로의 감각을 나누며 함께하는 대화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과 자연과 깊이 소통하는 김예지와 그녀에게 더욱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함께 걸어나간 고규홍의 이야기가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