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국식 룰렛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평점 :
지금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지만, 한때 위스키를 즐겨 마셨던 적이
있다. 아무래도 그때는 위스키의 맛을 제대로 알기 쉽지 않은 나이여서 그런가? 나에게 위스키는 수많은 향을 간직한 건조함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은희경의 여섯가지 단편을 담아낸 <중국식 룰렛> 역시
그런 느낌을 전해준다. 작가의 말처럼 “술, 옷, 신발, 가방, 책과 사진, 음악, 늘
가까이하는 사물들에 관한 여섯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단편집인데, 책의
제목이자 처음으로 등장한 단편이 ‘술’ 특히 ‘씽글몰트 위스키’에 관련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거 같기도
하다.
독일 영화 ‘중국식 룰렛’에서
이루어진 ‘거짓된 진실게임’이 독특한 바텐더 K의 가게에서 펼쳐진다. 그들은 진실게임을 하고 있지만, 그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그저 자신이 갖고 있는 진실, 하지만 그저 착각일 수도 있는 진실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감각적으로 그려낸다. 그런데 문득 그들의 이야기가 현대인의 삶과도 참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어떤 것이 진정한 나인지부터 가늠하기 힘든 세상이랄까? 자신의 정직성에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이냐는
질문에 5을 선택하면서도 그 진실게임을 이어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소설에서는 다른 맥락으로 풀어갔지만, 위스키에는 ‘천사의
몫’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숙성시키는 동안 매년 2퍼센트에서 3퍼센트 정도가 증발하는 것을 그렇게 부른다는데, 우리 삶에 있어 ‘천사의 몫’은
행운이 아니라, 진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신발에 대한 그리고 말 그대로 ‘대용품’으로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와, 음악에 대한 ‘정화된 밤’속의 가면을 수없이 바꿔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아무래도 첫번째 이야기를 조금 더
길게 끌고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단편집을 읽을 때면,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데,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좋기도 하면서도, 마음에 드는 이야기가 짧게 끝나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