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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오는 편지 - 최돈선의 저녁편지
최돈선 지음 / 마음의숲 / 2015년 10월
평점 :
독후감을 쓰기 전에, 책에서 받았던 느낌이나 좋은 문장을 메모해놨던
노트를 옆에 펼쳐놓곤 한다. ‘최돈선의 저녁편지’인 <느리게 오는 편지>를 읽고 ‘밤에 읽기 좋은 책’, ‘짙은 감수성이 배어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는 손끝에 물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고 끼적여 놓은 걸 보고 어떻게 글을 시작해볼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출판사에서 올려놓은 책 소개에 “사람들은 최돈선을 ‘물빛의
시인’, ‘시인이 닮고 싶어하는 시인’이라 부른다”라는 문장을 보고 웃고 말았다. 최돈선의 시를 전에 읽어 본적은 없지만, 에세이로도 충분히 그런 감각이 전해졌다는 것이 조금은 놀랍다.
지인과 주고받는 편지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이제는 손으로
편지를 쓰는 사람이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말이 왜 이렇게 마음 아프던지.. 생각해보면 나도 편지에 대한
추억이 정말 많았는데, 이제는 거의 손으로 편지를 쓰지 않는다. 멀리
가버린 친구에게 편지를 쓰면서 나도 모르게 그리움을 넘어 서운한 마음까지 편지봉투 안에 눌러 담은 채 우체통에 넣어버린 적도 있다. 그러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 우편함에 담겨 있는 친구의 편지를 보며, 행복해하면서도
겸연쩍었다. 그래서 사실 내 맘은 그게 아니었다며 다시 편지를 쓰기도 했던 적도 있다. 그런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문득 손으로 편지를 써서 보내볼까 하는 마음에까지 이른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내리는 저녁 숲 가에 서서>, 사실 나는 이 시를 영어로 공부했었다. 아 시에 공부라는
말을 붙이고 싶지는 않지만, 학창시절부터 나에게 시는 그런 대상이다.
그때 공부했던 교재를 꺼내보면, 청각적 요소와 시각적 요소의 대비나 현실과 이상향의 대비
같은 것을 표까지 그려서 정리해놨다. 그래서 책에서 이 시를 처음 봤을 때, 나의 반응은 ‘오올!! 아는
시다!!!!’ 였다. 심지어 완벽하게는 아니라도 얼추 암기하고
있는 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앞뒤로 덧붙여놓은 글을 통해 나는 처음으로 이 시를 감상할 수 있었다. 나름 익숙하다고 인식했던 시에서 느껴지는 낯선 감각이 참 좋았다. 따뜻한
밥을 지어놓고 기다리는 식구들이 있는 사람은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했던가? 최돈선의 저녁편지는 그런 감정들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