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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 피시 - 제23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오사키 요시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문사 / 2015년 6월
평점 :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에 대한 아름다움, 아련하게 남아있는
첫사랑의 추억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소설 <파일럿 피시>
정말 독특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한없이 서정적인 표현들이 마음을 흔들고, 또 한편으로는 수족관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꽤 많아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책이 처음부터 그렇게 쓰여진 것일까? 책장을 넘기는 감각이 부드럽다.
마치 수족관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가 된 듯 책 속을 유영하게 된다.
어느 날 밤 포르노 잡지인 월간 ‘이렉트’의 편집장인 야마자키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자기 자신의 일부일
수 밖에 없는 기억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 모리모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 열아홉 살부터
스물두 살, 참 아름다우면서도 불안한 시기를 함께해준 유키코의 전화였다. 그는 19년 만에 듣게 된 그녀의 목소리를 한 번에 알아듣는다. 길을 잃고 무작정 들어간 산구바시 찻집에서 처음 만난 그녀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려는 야마자키를 세상으로 인도해준
여성이다. 심지어 ‘발기시켜서 팔아보지 그래’라는 도발적인 말과 함께 그를 월간 ‘이렉트’로 이끈 인물이기도 한다. 그저 편집관련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
그에게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차례차례 전화를 걸어 지금의 직장을 찾아준 유키코, 그녀는 첫 만남에서부터
그렇듯이 야마자키와는 참 상반되는 그런 여성이고 무기력했던 그의 삶의 파일럿 피시이기도 하다.
파일럿피시란 수조를 설치하고 제일 처음 넣는 물고기를 말한다. 아직
생태계가 생성되지 않은 그 곳에서 다른 물고기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누군가의
삶에 파일럿 피시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항상 모든 관계가 아름답게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충분히 자신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지나간 사랑에 대해서 나쁜 기억만 온통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나의 고집스러움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애써 숨겨두었던 행복한 추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모으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과의 인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해준다. 그렇게 편안하게 그 시간을 추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이 소설 때문이고 ‘파일럿피시’라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