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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한 지성들의 르네상스 - 편안하고 재미있게 읽는 지식교양서
보헤미안 지음 / 베프북스 / 2015년 4월
평점 :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매체에 비록 소수라고 하지만 지적 우월감을 토해내는 전문가들이 써낸 기사를 본 블로거 보헤미안. 스스로를 ‘지극히 평범’하다고
소개한 그는, 그래서 생기는 경제, 시사, 미디어에 비친 역사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갖고, 블로그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뻔지르, <뻔뻔한
지성들의 르네상스>이다.
이런 저런 푸어가 존재하지만, 한국에서는 확실히 집을 소유했지만 대출로
인한 이자로 빈곤해지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에
초점이 가있는 거 같다. 일을 해도 빈곤에 허덕이는 ‘워킹
푸어(working poor)’에서 파생된 하우스 푸어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일단 집을 갖고 있는 하우스 푸어보다는 워킹 푸어쪽으로 정책의 방향이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뻔지르에서 다룬 하우스 푸어에 대한 이야기에 눈길이 갔다. ‘푸어’라는 단어가 들어가기는 했지만, 한국의 대출 구조상 자산을 잠식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일단 ‘자기 집을 가진
사람’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집조차 소유하지
못한 채, 워킹푸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도리어 부동산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정책으로 하우스
푸어에게 혜택을 주는 것은 불공평한 것이 아닐까?
또한 경제적 파급 효과를 내세워 유치하는 스포츠 이벤트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오랜시간 공을 들여서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한 것은 축하할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제는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처럼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대회를 이벤트 차원이 아닌 봉사의 개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는데, 나 역시 공감한다. 특히나 아웃도어 옷은 즐겨 입지만 아웃도어는
즐기지 않는, 심지어 생활체육을 할 시간은 지극히 부족한 한국의 상황에서 경기장과 부대시설을 대회가
끝나고도 활용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많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종교인의 활동을 이익추구를 위한 근로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란을 촉발한 종교인 과세, 공포마케팅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있는 닥터테이너(닥터+엔터테이너),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체는 허상에 가까운
대한민국의 인문학의 현실, 그리고 역사적 사실과의 혼동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나 영화.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읽어나갈 수 있는 이 책에 대한 소개를 읽고 이웃추가를 해놔서 올라오는 글들을 챙겨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뻔뻔한 지성들의 르네상스>의 2편을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