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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창수필
운서주굉 지음, 연관 옮김 / 불광출판사 / 2014년 10월
평점 :
명나라 말기 4대 고승(明末四大師)으로 알려져 있는 ‘운서 주굉’이 남긴 책 <죽창수필>. 서문에 그가 쓴 글을 보면 제목 그대로 ‘죽창(竹窓)아래서 때때로 느끼고 본
것을 붓 가는 대로 적다 보니’ 나온 책이라고 한다. 심지어
그의 나이 팔순이 지났다는 언급이 있었는데, 책을 읽다 보니 제자들이 자신의 말을 모아 어록을 간행한
것을 언급하며, 스스로를 범부라 말하며 ‘행여 사람을 그르치는
허물이 있을까 두렵기만 하다’라고 하는 것을 보며 다시 한번 서문을 찾아 읽어보았다.
그렇게 스스로 삼가고 조심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던 그의 마음은 그가 남긴 426편의 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인용했던 명나라 스님 욱당의 산거시山居時가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언제던가? 클래식 음악을 너무나 사랑했던 어느 스님의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수행
중이라 음악을 들을 수 없어 답답해하던 어느 날, 방바닥에 누워 그 서러움을 곰 씹고 있었는데, 비가 내리는 숲이 만들어내는 모든 소리가 오케스트라의 그것보다 아름다웠다고 했다. 나는 아직도 클래식 공연을 볼 때면 그 생각을 하곤 하는데, 욱당의
산거시도 그런 느낌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주굉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남긴 시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도를 배워야 한다. 아마 그런 글을 읽지 않은채로 내가 어느 산사에
누워서 자연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오케스트라의 교향곡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과
비슷한 이치가 아닐까 한다. 아름다운 산거시를 읽으며 감탄을 하지만,
그 시가 나올 때까지 선행되었던 깨달음에 대한 노력과 충만한 마음을 갖지 못하면 그저 시로만 기억될 뿐이 아닐까?
이런 생각은 그가 어록을 읽을 때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 할 때도 이어진다. 그
어록들을 그저 따라 하고 흉내 내어 비슷하게 말하면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원숭이가 사람을
흉내 내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 말을 남기기까지 어떻게 공부하고 깨달음을 희구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많은 책을 읽어왔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엄마는 그런 이야기를
종종 하셨다. 책만 읽으면 무엇을 하냐는 것이다. 책으로
읽은 것들이 행동으로 옮겨지고 삶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나아가지 않고 그저 책만 읽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어쩌면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한다. 책에서 주는 피상적인 가르침을 입으로 떠들어대면서
마치 내가 무엇이라도 된 것처럼 생각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사실 조금은 어려운 책이 아닐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충실한 주석이 있어서 생각보다는 훨씬 쉽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요즈음, 당신의
마음뜨락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처럼 나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