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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빌라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페루의 사과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린이 가끔 하던 말장난이었다. 내가 어느 날 사라지면 페루로 떠난 줄 알아, 라고 말했다. 페루엔 왜? 라고 내가 물으면 사과 때문이지, 라고 대답했다. 사과는 왜? 라고
물으면, 모르니? 삶이란 부재의 사과를 깎는 일이다, 할 때의 그 사과이지. 삶이란 사과 껍질을 가급적 얇게, 끊어지지 않게 깎는 일이야. 그 사과는 페루에만 있는 거야? 라고 물으면 당연하지, 라고 말했다. 76p
전경린의 <해변 빌라>의
마지막 장을 읽을 때까지 내가 끝내 내려놓지 못했던 이야기이다. 200페이지 정도의 소설을 참 길게
길게 읽으면서도 계속 이 부분이 떠오른 것은 아마 ‘난해함’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주위에 이런 말을 던지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 사실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오랜 시간 동안 읽을 수 밖에 없는 길지 않은 소설을 읽으면서 학창시절 과외선생님이 보여준 프랑스 영화의 난해함과
하나의 화면에 여러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이 존재하는 피카소의 그림도 떠올랐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학창시절의 나는 영화보다 영화관의 조명의 숫자를 세고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가끔 이 소설이 만들어내는
파도가 목까지 차오르는 듯한 답답함에 창 밖을 바라보긴 했지만, 에필로그와 작가의 말까지 다 읽어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의 화자인 유지의 친척이었다 엄마였다가 한 명의 여성으로 다가오고 있는 이린이라는 존재, 그리고 작은 고모인줄 알았던 이린이 엄마라는 것을 알고 해변빌라 509호로
짐을 싸 들고 온 유지. 이 두 명의 여성만으로도 버거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작은 흔적을 남기고 의미 없이 사라져간다.
어쩌면 사람이라는 존재가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유지의
생물선생님이었던 그리고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는 이사경은 우리 몸의 세포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은 수없이 죽으며 동시에 재생해내고 있어 우리는 불안정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사경의 어머니인 노부인의 말처럼 아무리 목표를 갖고 반듯하게 걸으려고 해도 지구의 움직임에 따라 미묘하게 어긋날 수 밖에 없는 그런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는 모든 것들이 그래서 의미를 알 수 없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닐까?
어쩌면 나는 유지의 남자친구였던 오휘의 시선으로 유지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처음에 언급했듯이 내 주위에 존재하지 않는 아니 솔직히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난해하고 애매한 존재인 유지이기에, “지금은 내가 평범한 삶을 살아서, 너와 나눌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라며 밀어내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새 유지의 삶은 내 옆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