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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발견 - 작고 나직한 기억되지 못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안도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시골에 작업실을 만든 안도현이 잔디밭에 돋아나는 잡초를 뽑아내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잡초의 이름을 아는 것은 좋았지만, 그것을 뽑는 일은 노역이었다고
말했는데, 옆집 아저씨가 ‘공구리’를 치면 된다는 조언을 해주셨다고 한다. 10년이 지난 후, 그는 잔디도 풀도 어울려 나는 것이 자연이라고 말하게 된다. 문득, ‘공구리’라는 것이 표준어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표준어가 존재하는 것은 좋지만,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지역사람들이
함께 사용해오던 말들까지 사라지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부추라고 하는 것을 영남에서는 ‘정구지’라고 한다는데, 그의
기억 속에 엄마의 손맛은 분명 ‘부추전’이 아니라 ‘정구지찌짐’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어머니께서 강원도와 경기도 경계에서 성장하셨기 때문인지, 그런 말들을 나도 모르게 사용할 때가 있다. 옥수수를 엄마가 늘
말하던 대로 ‘옥시기’라고 하니, 친구들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외할아버지가
직접 키우셔서 가마솥에 바로 쪄주시던 그 맛난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옥시기’였다.
시 쓰다가
날선 흰 종이에 손 벤 날
뒤져봐도
아까징끼 보이지 않던 날
안도현은 이 시를 발표했다가, 배운 사람이 일본말의 잔재를 사용한다는
항의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엄마가
발라 준 것은 ‘머큐로크롬’이 아니라 ‘아가찡끼’였다고, 그리고
나에게는 ‘빨간약’이기도 하다. 약국 가서 ‘머큐로크롬 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의심마저 든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일본어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는 단어를 사용하자면, 그게 아니라니까 하며 잘난 척을 하던 내가 떠오른다. 어쩌면 할머니에게는
그것이 당신의 삶이고 추억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는 사투리를 내가 잘 못 알아듣겠다는
이유로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기억도 난다. 세계잼버리를 열기 전에 한국잼버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지방에서 온 친구들이 사투리로 말을 하면 이유 없이 웃었던 나의 무례한 모습도 떠오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도리어 표준어라는 것이 ‘공구리’가 아닐까 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안도현의 발견>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안도현은 시인이란 잊혀진 것들 미처 찾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를 통해 나 역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