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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제주 가서 살까요
김현지 지음 / 달 / 2014년 10월
평점 :
얼마 전에 예약을 하지 못하고 불쑥 즐겨 찾는 음식점을 찾았다. 아니나다를까
우리가 좋아하던 전망 좋은 자리는 꽉 차있었고, 결국 홀에 자리를 잡을 수 밖에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창가로 시선을 보내다 보니 한 커플이 눈에 들어왔다. 나란히
앉은 두 사람, 남자는 계속 여자의 어깨를 감싸 안으려고 하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여자는 굳이
그 손을 계속 치워냈다. 내가 본 것만 해도 꽤 횟수가 많았으니 남자도 꽤나 빈정이 상할 그런 느낌이었다. 식사를 하다 문득 다시 그쪽을 바라보니 이번에는 남자가 풍경에 시선을 팔고 있었고, 여자가 그런 남자의 손을 굳이 당겨 만지작거리자 남자는 기쁜 듯 웃었다. 그
과정을 직접 보니, 뭐랄까, 아 저런 것이 ‘밀당’인가 싶기도 하고, 솔직히
좀 놀고 있다라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우리
제주 가서 살까요>를 읽다 비슷한 느낌을 전해주는 글을 만났다.
그들보다 조금 더 살아보니 너무나 뻔해보이는 거짓말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을 약속으로 나누는 커플을 보며 이 책의 저자 김현지도 ‘놀고 있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면서 또 한편으로는 부러웠다고 한다. 그런 감정들에 설레고 두근거리던 시절도 있었지 않았는가 하는 그리움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런 부러움이 전혀 없었다고는 말 못할 거 같다. 그래서
그녀의 다짐이 내 마음에도 굳게 남았다.
되도록 많이 놀자. 놀고 있자. ‘놀고
있네’, 더 늙은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그 말이 절로 나올 수 있도록, 그러면서 상당히 부러워질 수 있도록, 그렇게 놀고 있는, 그런 날들을 사는 것. 요즘 나의 일상 목표다. (50p)
사실 제목만 보면 요즘 많이 나오는 제주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온 편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이 책은 조금은 다른 느낌이다. 여권이 만료되었는데 늦은 휴가를
받아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제주도와 사랑에 빠져 이제는 틈날 때마다 제주도를 찾게 된 김현지가 그녀가 만난 제주, 사람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녀는 무엇이든 아는 척하는
것을 좋아하는 허세병을 갖고 있다고 한다. 사실 나도 좀 그런면이 많기는 하다. 제주에 대해서도 그 허세병을 절대 내려놓지 못하는 그녀, 그래서
차라리 제주도를 진짜 잘 알게 되는 순간까지 제주도를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그런 그녀가 털어놓는 제주에서의
이야기는 이국적인 정취보다는 도리어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것이 그녀가 제주도를 더 속속들이 알아가게 된 방법이 아닐까 하고,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 제주에 대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