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독
박완서 지음, 민병일 사진 / 열림원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보통 여행에세이라고 하면 이국의 풍경과 어우러지는 설레임 같은 것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너무나 좋아하는 작가, 박완서의 티베트 네발 기행 산문집이라는 소개에 특유의 따듯하고 담백한 느낌과 세계의 지붕이라는 티베트의 풍경이 참 잘 어우러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목이 모독? 왜 모독이지? 무엇에 대한 모독이지? 행여 다른 뜻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까봐 친절하게 한자로 冒瀆이라고 표기해주기까지 한 모독, 국어사전의 정의 그대로 말이나 행동으로 더럽혀 욕되게 함’.

박완서님이 지인들과 함께 만난 티베트, 20여년 전의 모습이니까, 티베트의 원형에 그래도 가까운중국화된 지금과는 많이 다른 그런 곳이다. 책을 읽으면서는 중국화되어가는 변화의 한자락을 그대로 느낄 수 있기도 했다. 포탈라 궁으로 순례를 가겠다고 걸어서 길을 떠나는 사람은 멀리 금박지붕이 보이기 시작하면 발길을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온몸을 던져 땅에서 기는 오체투지로 나아간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며 목적과 과정에 대한 가치관이 우리와 다른 티베트인들을 느낀다. 아마 그런 이질감은 초나 향의 향기로 익숙한 우리네의 절과 달리 버터기름으로 자욱한 티베트의 절과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찾아가는 포탈라 궁은 달라이라마 14세가 인도로 망명을 떠나면서 비어버린 그런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분법 사고에 익숙한 우리와 달리 그들에게는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의 공존이 가능했고, 그래서 우리에게는 빈 집, 혹은 빈 방처럼 느껴지는 그 공간이 다른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며 티베트만의 독특한 문화’, ‘자연 친화적인 자급자족 사회를 이루고 살아온 티베트에 한족들이 들어오면서 도리어 티베트인들은 획일화된 서구문명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당장 티베트 유목민의 집에 들어간 그녀도 그 방안에서 튀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단 하나의 문명화된 기구를 보며 느끼는 감정을 여행객의 아니꼬운 심미안이라고 솔직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그 곳은 지금 그대로 아니 혹은 조금 더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유지되기를 바라거나 변해가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대표적인 사람이 우리 남편인데, 나는 그럴 뉘앙스의 말을 할때마다 자기만 편하게 살려고 한다며 퉁을 주곤 했다. 그러면서도 딱히 그런 감정을 무엇이라 표현할 길을 몰랐는데, 정말 딱인 표현이었다. ‘여행객의 아니꼬운 심미안 

그리고 티베트의 정신문화를 말살하려는 정책을 보며 당해본 사람만이 아는 거의 피부적인 감각이라는 술회한다. 그리고 티베트인들을 무시하는 한족과 별 다르지 않은 관광객의 모습을 본다. 그렇게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순환되지 않는 쓰래기들을 보며 내가 그토록 궁금해했던 모독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뭐랄까? 티베트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독특한 문화를 그려내기보다는, 그 것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색과 통찰을 글로 풀어내면서 도리어 티베트를 더욱 가깝게 그려낸 듯 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네팔의 이야기는 차라리 조금 더 쉬운 느낌이었다. 네팔을 배낭여행객의 쉼터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꽤 많은 것으로 아는데, 이 책에서도 딱 그런 느낌이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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