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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는 당쟁사 이야기
이성무 지음 / 아름다운날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당쟁사로 읽어나가는 조선시대의 역사는 ‘정통성’이라는 단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재미있는 것은 중앙 집권적 문치주의를
지향하던 조선에서는 실제론 신료들간에 붕당을 조성하여 당쟁을 하는 것을 금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종때
조광조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죄목 역시 ‘붕당’이었을 정도였지만, 왕의 권력이 급격히 힘을 잃으면서부터 신료들간의 정책대결이 정권교체로 나아가 국왕을 신료들이 선택하는 수준까지
된 것이다.
또한, 어떠한 방식으로든 정권을 잡은 신료들 역시 자신들의 집권의
정당성을 인정받고자 했고, 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학문적 정통성을 내세워야 했다. 그래서 실제로는 동인과 서인간의 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애쓴 이이가 도리어 서인의 종장(宗長)으로 추대되기 이르는데, 나 역시
율곡 이이하면 기호학파의 스승으로 생각해왔기에 오해를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흐트러진 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국왕은 대통과 종통을 일치시키며 왕권강화에 초석을
놓고자 했고, 신료들의 힘으로 왕이 되었을 경우에는 이런 성향이 더욱 강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정통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왕실의 상복문제였다. 그렇기에 지금의 우리의 눈에는 소모적으로 보이는 일들이 실제 그 당시에는 당파간에 심각한 논쟁이 될 수 있었고, 왕도 이 문제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숙종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환국과 탕평책으로 붕당을 다스리려고 했던 것, 즉 균형을 잃은 권력의 축을 지나치게 왕쪽으로 끌어온 것이 결국은 붕당의 붕괴뿐 아니라 인재들의 씨를 마르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집중된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기에는 후에 이어진 왕들이 지나치게 어렸고, 결국 수렴청정이라는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이를 견제할 신료들의 힘이 사라져버려서 왕권이 세도가문에 매몰되게
된 것이다. 붕당정치가 조선 멸망에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일정부분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이런 모습들이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지연과 학연이
끈끈하게 남아있는 한국사회에서 당쟁의 구습을 찾아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조선시대와는
다르게 자유민주주의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한국은 시민의 힘을 키울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 그런면에서
당쟁사는 반면교사로 삼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