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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아멜리 노통의 <오후
네시>는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리게 한다. 뭐랄까? ‘왜?’라는 의문이 무의미해지는 느낌을 주는 책이라 그런 것 같다.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가르쳐온 에밀은 그와 육십 년 동안 함께 해온 부인 쥘리에트와 함께 드디어 ‘우리집’을 찾는다. 자신들이 기다려온 곳,
그리고 함께 여생을 보낼 완벽한 집을 찾아낸 그들은 바로 옆집에 의사가 살고 있다는 말이 마치 너무나 완벽한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장식된
초콜릿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웃은 그들이 꿈꾸던 삶을 완벽하게 깨트려버린다.
오후 4시에서 6시사이면 그들의 집을 방문하는 이웃남자 베르나르댕. ‘그렇소’, ‘아니오’라는 자신의 응답범주를 벗어나는 말을 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이웃남자의 방문에 두 부부는 정말 어쩔 줄을 몰라한다. 2층에 있으면서 안 들리는 척도 해보고
그 시간에 맞추어 산책을 나가기도 하지만 그의 방문을 피할 길이 없다. 처음에는 나 역시 ‘왜’라는 질문을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소설속의 이야기 속으로 초대되어 이웃집 남자를 상대해야 하는 에밀에게 빠져들게 된다.
지나치게 과묵한 이웃집 남자 앞에서 침묵을 지켜보기도 하고,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하고 그 어떤 방법을 써도 소용없어지던 어느날, 에밀은 ‘왜’라는 질문을
이제는 자신에게 돌리게 된다. 아끼던 제자의 방문까지 망쳐버린 이웃집 남자의 행태에 그는 ‘인생 전체가 실패다. 인생 전체가’라며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이웃과 사이 좋게 지내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기 자신뿐 아니라 평범한 행복을
꿈꾸는 부인까지 힘들게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변화는 없다. 여전히 이웃집 남자는 부부의 오후 4시부터 6시의 시간과 그의 체중으로 움푹 파인 안락의자 그리고 커피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이쯤 되면 그를 뿌리치지 못하는 에밀에 대한 ‘왜’라는 질문이 아니라, 이웃집 남자에게 ‘왜’라는 질문이 돌아가게 된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그의 부인은 왜 그런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걸까? 자살하려던
이웃집 남자를 구한 에밀이 그제서야 그를 이해했다는 식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나는 처음에
에밀이 이웃집 남자를 설명하기 위해 가져다 붙였던 장황한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솔직히 그 모든 것이 에밀이 갖고 있는 환상이길 바라는 마음까지 생겼었다. 그러나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는 상당히 불친절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이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