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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문득 미국 드라마 CSI 마이애미에 등장하는 호라시오 반장이 떠오른다. 아동성애자가 건물에서 뛰어내려서 자살을 하려는 순간 호라시오 반장의 그의 손을 잡아 구하려고 한다. 그 아동성애자는 자신은 또 그런 범행을 저지를 것이라며 죽게 내버려두라고 사정을 한다. 하지만 호라시오 반장은 당신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고, 또 그런
일을 하려고 하면 자신이 그것을 막을 것이라며 그를 구해냈었다. 하지만 몇시즌이 지났을까? 비슷한 상황이 다시 벌어졌을 때, 호라시오 반장은 건물에서 매달려
있는 범인을 구하지 않았었다.
몇십년전 사랑하는 딸 마사미가 살해당하고,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잊기 위해 이혼을 선택했던 나카하라는 전부인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보통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범행의 트릭이나 추리보다는 범행의 동기나 의도를 추적하는 과정에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이유로 한 사람의 생명을 뺏을 필요까지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사건들이었다. 그리고
범인들은 충동적이었고 우발적인 사건이라며 반성을 하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비슷한 범죄로 실형을 받고 살다 나온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재판과정에서 범죄자의 입장에 서야하는 변호인들은 그들의 잔인함을 희석시키려고 노력하고, 또 한편으로는 동정심에 호소하곤 한다. 도대체 ‘누가 동정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진정으로 동정받고 위로받아야 하는 범죄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의 가족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공허한 십자가>를 읽으며 처음에는 “사형의 최대 장점은 그 범인은 이제 (더 이상)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라는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했다. 하지만 나카하라의 딸을 살해한 히루카와의 변호사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히루카와는
재판과정을 통해 어린 아이를 죽인 자신의 죄를 반성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재판과정을 그저 자신의
운명이 어디로 가고 있느냐로 보고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도리어 변호사는 ‘사형은 무력하다’라고 말한다. 그
변호사의 모습이 호라시오 반장을 떠올리게 했다. 수많은 범죄자를 체포하고 그들을 감옥에 넣었지만, 아무런 죄책감이나 반성없이 출소한 후 또 비슷한 범죄를 저지르고 그 피해자들을 위로해야 하는 상황에 지쳐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형폐지론자의 입장에 선 것은 아니다. 나카하라가
전부인인 사요코가 쓰던 ‘사형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글을 읽을 때 너무나 공감되는 내용들이 많았다. 특히나 그녀가 자신의 딸을 죽인 사람은 히라카와지만, 그를 사회로 돌려보낸 것은 바로 국가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두번째
사건의 가해자 가족의 이야기가 도리어 형벌과 속죄에 대한 생각들을 끊어먹는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지만, 중반이
넘어서면서 그 이야기들과 어느새 잊고 있던 프롤로그의 이야기까지 짜임새 있게 흘러가면서 흥미롭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등장인물들처럼 고민하게 된 나로서는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서도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