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 오늘을 위해 밝히는 역사의 진실
김태훈 지음 / 일상이상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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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랬듯이 어린 시절 이순신 장군을 다룬 위인전 한번쯤은 다들 읽어봤을 것이다. 학교에서 역사를 배울 때도 임진왜란 때 바람 앞에 촛불 같던 조선의 운명을 구해낸 영웅으로 배우기도 하고, 이순신 장군을 다룬 책, 드라마, 또 최근에 1500만 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인 영화 명량역시 그러하다. 하지만, 너무나 익숙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도리어 잘 모르고 있는 인물이 바로 이순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객관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성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을 조명하고자 하는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를 읽으며 있는 그대로의 이순신을 만나는 과정이 조금은 낯설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갈수록 도리어 평범에서 비범으로 나아가는 이순신의 발걸음에 감동하고 찬사를 보내고 싶어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는 다르게 이순신은 문과 시험을 공부하다 22 10월에 무관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시점을 따져보면 결혼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데, 뛰어난 재력과 무예를 갖춘 장인어른의 지원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28 8월에 무관시험에 합격을 했으니, 생각보다 오랜 시간의 준비가 있었다. 비록 관직에 나아간 나이는 늦었으나, 그는 강직하고 단호한 성품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나갔다. 파직과 백의종군의 아픔을 겪기도 하지만, 올곧은 그의 성품은 조정의 주목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이순신이 전라좌수사가 되기 전까지의 과정을 읽다 보면, 그는 하늘이 내린 영웅이라기보다는 자신을 끝없이 단련시켜 나가는 진정한 영웅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래서 더욱 그의 언행이 사람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 것이 아닐까?

사실 임진왜란이라는 말이 더 입에 익숙하지만, 책을 읽으며 ‘7년 전쟁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더 맞는다는 판단이 섰다. 왜구에게 당했다는 뉘앙스를 갖은 말보다는 일본과 조선 그리고 명나라까지 참여한 전쟁이고 또한 우리의 승리로 끝난 전쟁을 좀 더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순신 장군에겐 단순히 일본과 싸운 7년 전쟁이 아니라 수시로 참견과 견제를 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따지기에 여념이 없는 조정과 명나라와의 싸움이기도 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7년 전쟁이 끝나고 그 후 공신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정말 할 말을 잃었다. 의병장은 완전히 배제된 채로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장군들 몇 명만을 겉치레 식으로 공신으로 선정하고, 그 수배에 달하는 수의 명예를 자신과 함께 피란길에 오른 문신들에게 돌리는 모습이 어찌나 우스꽝스러운지. 자신들의 실추된 권위를 만회하기 위해 명에 구원병을 청한 사실을 과대평가하고, 실제로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을 폄하하는 언행도 서슴지 않았다. 참 안타까운 것은 위정자들의 이런 모습이 옛날 이야기처럼 아득한게 아니라 참 익숙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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