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엄마의 도쿄
김민정 글.사진 / 효형출판 / 2014년 7월
평점 :
"당당한 태도로 살아. 자유롭게
선택하고 마음껏 즐겨. 그렇지만 삶의 모든 책임은 네게 있다는 걸 잊지 마."
요즘 말로 ‘쿨하다’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 듯 한 말이다. 이런 말을 해주고 공부하라는 말 대신 돈가스(일본어에서는 수험생을 위한 음식으로 알려짐)를 사주며 힘을 주던
엄마에 대한 추억이 어린 도쿄의 이런저런 얼굴을 담아낸 책 <엄마의 도쿄> 나에게 도쿄는 할아버지와의 시간들이 여기저기 스며들어 있는 그런 곳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할아버지가 많이 생각날 줄 알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추억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이 책의 작가인 김민정님의 글은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힘이 있는 거 같다.
엄마가 즐겨 쓰던 ‘헤치마 코롱’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책에도 나온 대로 이 코롱은
일본의 화가이자 시인인 다케히사 유메지의 그림을 광고로 사용했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길을 가다 그 그림을 보고 할아버지는 그의 시 ‘달맞이 꽃’을 읊어주셨다.
꽤 짧은 시였는데, 일본어로 그리고 어린 손녀를 위해 한국어로 다시 한번. 사랑하는 님을 마냥 기다리기만 해야 했던 달맞이 꽃의 심정을 이해하기엔 그때는 너무 어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안타까워라’라는 애수 어린 목소리가 기억에 오래오래 남은걸 보면, 사람들이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니 이 책도 그런 느낌을
준다. 읽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추억여행에 흠뻑 빠지게 된다.
눈이 소복이 쌓인 들판에서 아빠가 밟았던 발자국을 엄마가 밟고 그렇게 단단해진 발자국을 자신이 밟게 하던 이야기는 참
따듯했다.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 성인이 되어버리지만, 그런
기억들은 일종의 보호막같이 평생을 마음에 품고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던가? 아빠와 엄마와 함께 여행을 갔다가 기차에서 내리다 아빠의 손을 놓치고 발을 헛딛어 넘어졌던 기억이
난다. 다들 그 관광지로 오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우르르 사람이 내려서 사람들에게 밟힐 뻔 했다고
엄마가 나중에 전후 상황을 이야기 해줬었다. 하지만 내 기억에 남는 것은 지금까지도 그렇게 화난 것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분노한 얼굴로 가방을 휘두르던 아빠와 얼른 나를 품에 안아주던 엄마뿐이다.
그렇게 위험한 상황이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고 그저 그 기억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 기억이 ‘단단해진 발자국’이 되어주는 거
같다.
다리모델을 꿈꿀 정도로 멋쟁이에서 시골 부잣집으로 시집을 왔다 남편을 여의고 두 아이와 함께 일본으로 와야 했던 책 속의
엄마의 이야기는 엄마와 나의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특히 엄마의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그러했다. 사실 나도 그랬던 거 같다. 엄마에게 엄마의
삶이 있고 그 삶 속에서 엄마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참 못 받아들였다. 엄마의 선택을 늘
서운해했고, 반항의 표시로 잠적이나 독립이라는 극악의 수를 사용해 엄마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심지어 자기 성질을 못 이기고 담이 와서 쩔쩔매기도 했었다.
그때마다 엄마가 먼저 미안하다고 많이 이야기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왜 그때는
그렇게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어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스물하고 두 살이 된 그제야 나는 엄마의 손을 놓아줄 수 있었다.
엄마의 손을 놓고 걸어갈 수 있었다” 나는 끝까지 엄마의 손을 놓지 못했던 거 같아 문득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참 어리기만 한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