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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는 미술관 - 기억이 머무는 열두 개의 집
박현정 지음 / 한권의책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미술관에 혼자 간 적이 있습니까?”
나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혼자 하는 것에 꽤 익숙한 사람이다. 영화 파리넬리가 개봉했을 때는 혼자서 몇 번을 영화관을 찾아 아름다운
음악에 빠져들곤 했다. 작품의 이름도 기억 못하면서 그 작품을 봤을 때의 감각을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하는
설치예술작품이 있다. 만약 그때 내가 혼자가 아니었다면 그 화면 속에서 웃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절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기억하는데 난 그 작품 앞에서 거의 한 시간을 앉아있었고, 누군가 함께 했다면 지루해하거나 다른 곳으로 가자고 내 손을 끌었을지도 모른다. 또 미술관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는 것을 좋아해서일까? 한동안
모리미술관에 거의 출석부를 찍었던 적도 있다. 어릴 때는 ‘무제’라던지 ‘단상’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작품을 보고 책임감이 없다던지, 생각없이 그냥 붓가는대로 그렸다며 짜증을 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그런 이름을 가진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을 그 속에 투영시키고 나 자신을 한발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혼자 가는 미술관>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감상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특히 ‘스스로에게 진실을 이야기한다’라는 표현이 참 마음에 들었다. 미술관은 나에게도 그런 공간이기 때문이다. 덕수궁 미술관에서 연표를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시간이 늦어버려 어둠이 깃든 밤의 궁에 서게 된 그녀는 고종을 옆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웅만이 기억되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 실패한 군주, 나라를 빼앗긴
군주로 기억되는 고종에게 향하는 작가의 독백은 그래서 안타깝고 또 아쉽다. 그런데 그 이야기 속에서
점점 고종이 치욕의 시간 속에서 박제된 인물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으로 다가오는 것이 참 독특했다.
이 책에서 소개된 여러 화가 중에 눈길을 사로잡은 윤석남. 그녀는
남편의 사업이 번창하고 살림살이가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책한 권 읽을 방 하나가 없다는 것에 좌절하며 ‘핑크룸Ⅳ’를 탄생시킨다. 뭐랄까? 꽃분홍빛에
잔꽃무늬가 가득한 쇼파와 자개장이 떠오르는 구성을 보며 엄마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립스틱을 사오라면서
몇호가 아니라 꽃분홍색을 사오라고 시키는 엄마였다. 아마 작은 크기의 꽃이 아니라 왕 꽃이었다면 딱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무채색을 좋아하는 아빠와 꽃무늬를 질색하는 딸 사이에서 엄마는
작품 속에 여성처럼 답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윤석남 작가의 작품은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도 다시 등장하는데, 자신이기보다는 누군가의 무엇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많은 여성의 속내를
담아낸 그녀의 작품에서 시선을 떼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