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 정호승의 새벽편지
정호승 지음, 박항률 그림 / 해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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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키가 90미터 이상이고 지름이 10미터에 달하는데 뿌리는 2,3미터 정도만 뻗는 레드 우드 삼나무가 있다고 한다. 이 나무들은 깊게 뿌리를 뻗지 못해도 옆으로 25미터 이상 뻗을 수 있어 한 뿌리에 여러 그루의 나무가 자랄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나무들처럼 사람들도 그러하지 않은가? 가끔은 노래가사처럼 세상 끝에 홀로 버려졌다고 좌절한적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나에게 손을 뻗어주고 보듬어 준 것도 결국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행복이 있다면 서로를 이해하며 사랑하는 것뿐"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또한, 성철스님과의 일화도 기억에 남는다. 필름이 아깝지 않냐며 왜 이리 사진을 많이 찍느냐 묻던 성철스님은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많이 찍어야 한다는 말에 “그래, 그러면 천 번을 찍어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나는 타고난 작은 재주에 정말 많이 의지하는 편이다. 그래서 주위에서 볼 때 쉽게 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말하기도 하고, 때로는 뭘 해도 정말 성의 없이 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예전에는 내가 갖고 있는 버릇을 모른 채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지 서운해하기도 했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자신이 갖고 있는 단점들을 인정하기 시작해서인지, 성철스님의 말이 참 마음에 와 닿았다. 가만히 내 삶을 돌아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단 한번이라도 천 번이라도 해보겠다는 의지로 무엇인가를 해 본적이 있던가?

정호승의 새벽편지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를 읽다가 문득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 간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문장 하나하나를 소리 내서 읽으며 내 온몸에 담아보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지만, 그림이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제던가..? 서클렌즈로 자신의 눈동자를 덮은 점원과 이야기를 하면서 마치 죽은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거 같아서 뒷골이 오싹했었다. 아마 그 무렵에서 본 어떤 영화에서 눈동자가 검은 색으로 뒤덮이는 효과로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을 표현하는 걸 봤었던 거 같기도 하다. 어쨌든 그래서 책 속에 담겨 있는 그림 속의 여자들의 눈이 솔직히 무서웠고 그 느낌이 계속 그림 속의 모든 것들에 이어졌다. 그러다 저자인 정호승이 책에 수록된 그림을 그린 박항률의 그림을 사랑하는 까닭를 직접 설명해주는 글을 읽게 되었다. 그 글을 읽고 보니 계속 거슬리던 눈매는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림의 분위기가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아마 그 글이 없었다면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경험에 갇혀 박항률의 그림이 갖고 있는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자신이 만들어낸 틀 안에 갇혀 있는 나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바로 책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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