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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달, 제주 - 월별로 골라 떠나는 제주 여행
양희주 지음 / 조선앤북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내가 서울을 제외하고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을 꼽아보자면 그 중에 제주도가 들어갈 것이다. 일선에서 물러나신 할아버지가 건강이 나빠지기 전까지 머무시던 곳이고, 할아버지를
뵈러 그 곳을 자주 찾아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도하면 한라산이나 유채꽃이나 귤 같은 것이 아니라
난을 가꾸시거나 고목을 손질하시던 할아버지의 등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이번에 읽은 <열두 달, 제주>는 제주에서 벌써 4년째 살고 있는 양희주님이 제주의 1년을 여러 가지 각도로 담아낸 책이다. ‘종잡을 수 없는’ 여인내 속내 같다는 제주도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책을 읽으며 내가 아는 제주와 또 다른 제주를 만날 수 있었다.
우도로 떠난 5월에서는 마지막 배가 떠난 텅 빈 해안가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도리어 정겹게 느껴질 고요함이 한편의 풍경화처럼 느껴졌다. 홍조류가 굳어져 만들어진 반짝이는 흰 모래, 눈이 시리게 푸른 바다와
저 멀리 보이는 한라산까지 홍조단괴해빈은 정말이지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얼마 전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제주도를 찾은 추성훈의 부인 야노시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의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을 골라주었는데, 사실 그때 시아버지의 따듯한 마음이 부럽기도 했다.
며칠이 지나서 시아버지와 통화를 할 때 혹시 그런 곳이 있느냐고 슬쩍 여쭈어보니 생각해보겠다고 대답을 주시긴 했다. 워낙 말이 많지 않고 무뚝뚝한 분이긴 하지만, 괜히 그 대답에 설렜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그때 소개된 곳이 바로 ‘섭지코지’다. 노란 들불처럼 제주에 번져가는 유채꽃밭. 제주도 방언으로 깜찍하고 야무지다는 뜻의 ‘요망진’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말이 딱 이라는 생각이 든다. 야무지다는
것은 아무래도 제주의 밥상을 풍요롭게 해주었단 유채나물 때문이 아닐까? 나도 가끔 제주도에 쉬러 갔을
때 아주머니가 된장에 무쳐주던 유채나물이 생각나곤 할 정도로 별미이기도 하다.
또한 서북풍을 몰고 오는 바람신(영등신) 영등할망을 맞이하는 굿과 떠나 보내는 송별제를 지내야 찾아온다는 제주의 봄은 야생화가 있어 더욱더 아름다웠다. 잔설 사이로 야생화 복수초가 삐죽 고개를 내밀면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복 복(福)자에 목숨 수(壽) 만수무강을 뜻하는 이 꽃은 황제에게 진상되던 꽃이라고 하는데, 문득 진시황이 찾던 불로초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추사의
흔적을 따라간 4월의 여행은 내가 꼭 가보고 싶은 그런 곳이었고, 메밀꽃
야경과 은빛 억새가 춤추는 가을의 제주의 정취에 취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