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 난징대학살, 그 야만적 진실의 기록
아이리스 장 지음, 윤지환 옮김 / 미다스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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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난징대학살을 담고 있는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를 읽다 보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가 떠오른다. 아우슈비츠가 홀로코스트(유대인대학살)의 대명사가 된 이유는 생존자가 다른 수용소에 비해 많았고 그들이 나치의 만행을 증언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역사는 남아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기록하고 그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왜곡되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질 수 밖에 없다. 힘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역사를 자신의 방식대로 재구성하고 기록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이 책을 쓴 아이리스 장. 그녀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과거를 되풀이 한다라는 조지 산티야나의 말을 준엄한 경고로 받아들이고 난징대학살의 진실을 밝히고, 양츠강으로 던져져 불에 태워져 흩어져가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모아 세상 밖으로 끌어냈다.

사실 처음에 있는 사진자료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예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의 증언을 보며 느꼈던 충격과 무서울 정도로 유사했다. 지금까지도 어떻게 인간으로서 저런 행동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지워내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도리어 그 의문이 깊어지기만 했다. 그래서 그녀는 첫 장을 일본군대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규명해보기 위해 노력한다. 집단적이고 기계적인 일본의 교육제도나 왜곡된 가치관을 주입 받은 일본의 사관생도. 교육과 세뇌의 무서움을 이해한다 해도 한 생명을 죽이는 것으로 시합을 한다는 것은 이해하고 싶지가 않다. 언제나 나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아바라기 노리코의 시처럼 말이다.

난징의 대학살의 사상자수는 최소 26만 명에서 최대 35만 명까지 잡는다고 한다. 이 수치는 제 2차 세계 대전 동안 유럽 전역의 사상자보다 많다고 한다. 거기다 몇 년에 걸쳐서 이루어진 유대인 학살과 달리 난징대학살은 불과 몇 주에 걸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 이 사건의 참혹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난징대학살은 세상에 그렇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홀로코스트를 담은 영화는 수없이 제작되고 안네의 일기나 다양한 책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지만, 난징대학살은 그렇지 못하다. 그 배경에 있는 서양국가들의 편의주의적 무관심또한 놀라웠다. 물론 난징대학살이 이루어지던 시기에 중국에 있던 서양인들의 숭고한 사랑은 감동적이었지만……

지금도 일본은 이 책의 내용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을 쓴 아이리스 장은 난징대학살을 취재하는 도중 얻은 우울증과 일본 극우세력의 끈질긴 협박에 시달리다 자살을 선택하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며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벌이곤 한다. 하지만 점점 피해자 할머니들의 숫자가 줄어가는 모습을 보면 일본은 그저 시간이 지나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신들의 만행이 잊혀질 것이라고 믿으며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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