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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재판 -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 ㅣ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2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파계재판> 제목을 보는
순간 시마자키 도손의 <파계>가 떠올랐다. 역시나 거기서 모티브를 잡아온 책이었는데, 메이지 유신으로 봉건적
신분제도가 철폐되었다고는 하나, ‘에타(穢多)’와 ‘히닌(非人)’이라고 불리던 천민계층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근대가 열리면서 새로 평민 계층에 편입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피차별부락민’으로 분류되던 시대와 그 사회적 규율을 이겨내려고 했던 교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파계> 그리고 자민당의
55년 체제가 열리면서, 전기 고도성장이 이루어지던
1960년 법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파계재판>
‘사람이 아는 자의 이야기’라는 부제는 이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겉으로는 이미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거기다 소득배증계획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의 신호탄을 쏜 일본사회에 깊은 곳에서
뿌리 박혀있는 신분 차별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정공법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더 매력적인지도 모르겠다. 최고의 법정미스터리를 손꼽히는 작품답게 처음에는 내연녀와 남편을 죽이고
시체를 유기했다는 4가지의 혐의로 죄명으로 법정에 선 은퇴한 연극배우 무라타 가즈히코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유죄를 확신하는 중견검사와 그의 무죄를 믿고 있는 젊은 변호사의 날 선 공방전이 이어진다. 증인들이 등장할 때마다 이어지는 증언과 심문과정을 읽다 보면 점점 이 사건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가기만 한다. 그래도 책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치열한 심리과정을 법정기자
요네다 도모이치의 눈으로 그려내면서 자칫 지리멸렬해질 수 있는 과정에서 중심을 잡아준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치정사건을 통해 일본사회의 너무 오랜 시간 그래와서 당연하게 느껴지는 짙은 그림자를
수면위로 끄집어내는 과정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특히 변호사 햐쿠타니의 최종변론을 읽다 보면, 1906년에 완성된 도손의 소설 속의 상황들이 그가 법정에서 변론을 하고 있는 1960년에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아닌 자’라는 호칭을 갖어야 했던 그들의
아픔이 느껴진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지금까지도 도선의 소설이 아니 이 책 <파계재판> 마치 아주 오래된 옛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