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남자를 말하다 - 손목 위에서 만나는 특별한 가치
이은경 지음 / 책이있는풍경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그림동화의만물박사를 읽어주시면서 잘 갖춰 입은 신사에게는 시계가 필요하다며 당신의 시계를 보여줬던 기억이 난다. 따지고 보면 나는 시계를 거의 액세서리 개념으로 생각하기는 하지만, 꽤 괜찮은 시계 컬렉션을 갖게 된 이유가 아마 그때 봤던 할아버지의 미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한다. 남자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취향을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액세서리인 시계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시계를 지극히 사랑한 할아버지, 아빠, 친척 그리고 남편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책을 읽다 나마저도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하고 있는 IWC의 어린왕자 로즈골드 에디션에 푹 빠져버렸다. 그런데 이것은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수량이 문제라 구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초조하기도 하다.

롯데백화점 명품관 멤버십 매거진 에비뉴엘의 패션디렉터로 일하면서 매년 스위스로 시계 출장을 가고 국내외 시계 브랜드 행사에 참여하며, 8년 동안 시계를 사랑하고 공부해온 대한민국 1호 시계 컨설턴트 이은경은 시계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계의 등급을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그녀는 시계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소장하고 싶은 가치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즉 시계는 오롯이 자신의 기준에 따라 그 가치를 더해볼 수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결혼을 할 때 남편에게 장인이 수작업으로 완성한 오트 오롤로지등급의 시계를 선물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남편이 즐겨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 커플 시계로 마련한 특별하지만 합리적인 프레스티지등급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도리어 럭셔리 브랜드임을 앞세운 시계이기도 하다. 확실히 시계의 등급을 정하는 기준은 있지만, 우리의 생활 속에서는 시계에 자신만의 등급이 더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기계식 시계의 가치를 장인들이 시계에 쏟아 붓는 노력과 열정에서 만들어진다는 이야기에 내가 갖고 있는 시계들을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기도 했다. 시계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그 속에 숨겨진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정교함의 미학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또한, 시계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의 시계는 6원을 주고 산 것이니 2원짜리인 김구 선생의 시계와 바꾸자고 한 윤봉길 의사는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라는 말을 남기고 도시락 폭탄을 들고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분들이 남기고 간 시계들은 74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참 따듯하고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10·26사건 직전에 김재규가 박정희 생일 선물로 준비한 파텍필립 시계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조금은 안타깝기도 했다. 결국 주인에게 전해질 수 없었던 하지만 파텍필립 시계 장인이 자신이 만든 시계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손꼽히기도 했던 그 시계는 그 후에 박근혜에게 전해지지만 흉물스러운 시계라 제대로 보관하지 않아 그 행방을 알 수 없다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시계들은 자신을 소유한 사람들에 따라 정말 다양한 사연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나에게도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 보여주셨던 회중시계가 있고, 그 시계를 만져볼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보물을 대하는 것 같고,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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