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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12년 - Movie Tie-in ㅣ 펭귄클래식 139
솔로몬 노섭 지음, 유수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미국의 영토가 서쪽으로 확장되어가면서 그에 발맞추어 노예제를 확대시켜나가려는 남부와 그를 억제하려는 북부의 대립은
계속되었다. 노예주와 자유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치열한 협상과 법안들이 계속되던 그 시절이었을 것이다. 자유주인 뉴욕에서 태어난 솔로몬 노섭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갔다가 노예상인의 꼬임에 넘어가 노예주로
가게 된다. 그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거래와 소유 그리고 일방적인
착취가 가능한 물건으로 대우받게 된 그는 30여 년의 자유인으로서의 삶과 12년간의 노예로서의 삶을 갖게 된다.
예전에 미국 역사를 공부할 때 ‘전시 중에 거래가 금지된 품목’으로 흑인노예들이 취급되었다 것을 배웠다. 물론, 남북전쟁 당시의 도망친 노예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하나의 길이기도 했지만 이를 보면서 진정한 아이러니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그러한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고 ‘자유’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대이기 때문에 갖는 감정일거라는 생각이 먼저였지만 그 이면에는 과연 흑인
노예들 자신들도 그것을 수치스럽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노예 12년>을 읽으며 솔로먼 노섭이 겪은 그 절망과 좌절 그리고 고통이 손끝에 느껴지는 듯 했다. 그리고 그의 입장에서 그에게 한없이 잔혹했던 그리고 또 그와 반대의 입장에 서있던 백인들에 대한 감정들도 느껴졌다. 내가 자유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듯 그 시대의 남부의 백인들 역시 흑인은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노섭의 생각처럼 그들의 ‘무정하고
잔인한 족속’이 된 것은 정말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분명 이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노섭이 자신에게 주어져있던
‘자유’를 되찾고자 하는 의지를 꺾지 않고 실천했듯이, 흑인노예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천한 사람들도 있었다. <노예 12년>이
갖고 있는 영원할 것 같은 아픔이 끝날 수 있었던 힘은 거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이야기는 정말로 애석하게도 실화다. 실제로 이러한 일이 있었고, 지금도 실제로 그것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볼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흑인 여성작가인 토니 모리슨 역시 백인들의 행동을 지적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이주민들이 그런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며 자신들의 지위 상승을
노리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가장 쉽게 주류사회에 편입할 수 있는 길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만 있다면 노예제도 같은 불합리한 일 역시 절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