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선 여인들 - 역사의 급류에 휩쓸린 동아시아 여성들의 수난사
야마자키 도모코 지음, 김경원 옮김 / 다사헌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20대 초반 조선 민족 청년과의 사랑과 원하지 않던 이별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시아 여성 교류사를 연구하게 된 야마자키 도모코. 그녀는 <경계에 선 여인들>을 통해 전쟁과 식민지 그리고 이념의 대립 같은 혼동의 소용돌이를 살아간 1930~1940년대를 살아간 여성들을 통해 그 시대를 또 다른 시각으로 읽게 해준다.

책을 읽으며 이승희라는 여성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조선 민족의 여성인 최승희는 일본에서 모던 댄스 무용가가 되어 3년 동안 유럽 순화공연을 할 정도로 그 명성을 날렸다. 그녀가 무용을 배우게 된 계기는 바로 그녀의 오빠 최승일이 반일감정을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신체로 표현하는 무용예술이 더 오래 그리고 더 상징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을 거라는 판단으로 권유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무용에 대한 남다른 재능이 있었고 그 시대 일본 지식인층에서 조선 무용의 전통을 살린 창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태평양 전쟁을 수행하던 일본의 강권정책과 통제를 남편의 조언으로 유연하게 넘겨낸 그녀지만 남과 북이라는 또 다른 선택의 길 앞에 놓일 수 밖에 없었다. 한 예술가의 삶이자 그 자체로 한국 근 현대사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읽다 보니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절로 생겨났다. 그녀의 눈부신 재능이 민족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데올로기의 갈등 속에서 그렇게 사그라들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말이다. 이승희와 함께 소개된 만주국 출생의 일본인 소녀 리샹란이 자신은 일본도 중국도 선택할 수 없고 그저 만주성벽위에 서겠다고 했던 것과 강압에 의해 창씨개명을 하면서 자신의 성을 잃었다는 뜻의 한자를 선택한 시인 김소운의 선택도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했다.

또한 시기와 지역과 민족에 따라 세가지 형태로 구별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놓은 종군위안부의 역사는 정말이지 너무나 가슴이 아파왔다. 일본의 속임수에 의해 강제로 종군위안부가 된 조선과 타이완의 여성들뿐 아니라 적국으로 간주하던 나라와 민족의 여성들이 당한 고초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었다. 문득 나치의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대명사가 아우슈비츠가 된 것은 그 곳에 생존자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30만에서 60만 명 이상을 수용했던 많은 곳들이 생존자가 극소수인 절멸수용소였고,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증언할 기회조차 잃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처음 등장했던 일본인 위안부의 기억처럼 일본군이 위안부와 함께 옥쇄를 하는 결정을 하게 된 것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까 한다. 그리고 지금도 일본이 책임을 미루며 시간을 보내는 것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국제적인 정략결혼으로 원하지 않는 상대와 결혼을 해야 했던 조선 이조의 황태자 영친왕 이은과 결혼한 일본의 황족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 그리고 일본이 날조한 만주국 황제의 동생 푸제와 일본 화족인 사가 히로. 그들은 일본정부의 뜻에 따라 결혼생활을 이어갔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자신들의 결혼을 불행하지 않게 지켜왔다. 그 결혼에 대해 인간적 행복을 지켜왔다라는 저자의 평가가 참 인상적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 시대의 부정적인 교류를 반성하고 인본주의에 입각한 긍정적인 교류로 나아가야 한다는 그녀의 이야기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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