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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의 안식처, 에르미타를 찾아서 - 스페인에서 만난 순결한 고독과 위로
지은경 지음, 세바스티안 슈티제 사진 / 예담 / 2013년 12월
평점 :
에르미타.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에르미타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책소개정도를 읽었을 때는 막연히 예이츠가 노래하던 이니스프리 호수의 섬에 있는 오두막이나 소로의 월든 호숫가의 오두막 정도를 떠올렸었다. 하지만 <순례자들의 안식처, 에르미타를 찾아서>를 읽고 나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닮은 듯 하면서도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르미타는 스페인 북부의 계곡과 산들 사이에 위치한 중세시대의 암자를 이야기한다. 특히 에르미타는 '은둔지', '사람이 살지 않는 장소', '세상과 뚝 떨어진 집', '사막과 같이 황량함'과 같은 뜻을 갖고 있는데, 종교적으로든 개인적인 이유로든 복잡한 세상에서 고립되어 자연 속에 파묻혀 살아가고 싶었던 사람들이 직접 지은 그런 곳이었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에르미타를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가장 원시적인 사진장치인 핀홀 카메라(바늘구멍 사진기)로 찍은 세바스티안 슈티제의 작품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우리가 묵을 호텔은 별 하나짜리도, 별 다섯 개짜리 호텔도 아니야. 밤하늘이 가득 채워지는 밀리언 스타 호텔이야"라고 설명되던 노란 르노 승합차 일명 ‘에르미타 익스프레스’를 타고 그 여정의 일부를 함께한 지은경님의 글이 담겨 있다.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 명의 순례자만을 만나봤다던 세바스티안 슈티제의 말처럼 대부분의 에르미타는 황폐화되어 있다. 사실 사진에서도 느낄 수 있었지만 험한 자연 속에 지어져 있는 에르미타들은 허물어져 있거나 이미 나무가 지붕이 되어버린 상태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하늘은 내 사진 속에서 에르미타의 감정을 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긴 기다림을 통해 남겨진 에르미타의 사진들은 많은 생각들을 전해준다. 물론 550채 정도의 에르미타 사진을 찍고 방문한 산 안토니오 에르미타에서는 그들을 데리고 미사를 보는 신부님을 만날 수 있는 즐거움도 있었다.
차를 타고 찾아가도 그렇게 험한 곳으로 떠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리고 그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떠나간 두 사람은 어떤 생각들을 할까? 글뿐만 아니라 사진에서까지도 참 많은 생각이 전해지는 책이다. 너무나 빠른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시간표대로 흘러가는 자연 속의 삶으로 가장 느린 방법으로 찾아가 우리에게 전해준 이 책은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쉼표가 되어주지 않을까 한다.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는 역시나 막연한 이야기인지 몰라도 지은경님처럼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자유롭기를 바라게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