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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평점 :
우리에게 오래오래 기억되고 사랑받을 작품들을 남기신 박경리님과 박완서님.. 이 두분의 작품을 어제오늘 읽게 된 것이 참 즐겁다. 이번에 읽게 된 박완서님의 작품은 한편의 소설과 박완서님의 일상이 그대로 담겨져 있는 에세이를 함께 담고 있는 [노란집]이다.
페트병에 든 막거리를 싫어하는 영감님을 위해 찌그러진 주전자에 옮겨담아 새참을 내가는 영감님의 마나님. 영감님이 홀로 술을 마실까 걱정스러워 그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야 할 거 같은 마나님. 함께 늙어가는 마나님의 얼굴을 보며 세상을 뜨고 싶은 영감님.. 정말 '지극한 사랑'이라는 표현이 딱이다 싶었다. 뜨겁고 열정적이고 너 아니면 안될거 같은 사랑은 세월에 흐려진다 해도.. 이렇게 함께 서로 의지하며 위해주며 늙어갈 수 있다면.. 행복하리라.
박완서님의 글들을 읽다보니.. 문득 우리가 얼마나 옛것을 빠르게 지워나가고 있나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린시절 유난히 깐깐한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나.. 행여 옷깃에 더러움이 조금이라도 타면 금새 갈아입어버리셔서.. 늘 빨랫줄에 걸려져있는 한복들을 보면서 자라난터라.. 요즘의 사극을 보면 옷채 그대로 널려있는게 얼마나 틀린건지 이야기 해주실 분이 이제는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노망을 U턴이라고 표현하시며 육젓을 곁들인 흰쌀죽을 이야기를 들려주실 분도 말이다. 그렇게 사라져가는 우리의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을까?
마을의 정신적 지주역활을 하셨다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의 할아버지들을 떠올리게 했다. 남녀차별이 당연시 여겨지던 시절.. 어쩌면 가장 유교적인 규율에 물들어계셨을 할아버지께서 사랑하는 손녀의 이름 '완서'를 지으시려고 아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시던 모습도, 방학에나 돌아오는 손녀를 위해 양력설을 챙기게 되신 이야기도 다 그러했다.
그렇게 사랑받은 기억이 그녀가 힘들고 삶이 비루해지는 고비때마다 힘이 되었다라고 표현하셨는데.. 나도 그런 기운으로 살아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친가에서는 막내손녀딸로.. 외가에서는 첫째 손녀딸로.. 태어난 나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주셨던 두 할아버지.. 명절이면 맛있고 따듯한 음식을 먹이시려고 당신 무릎을 늘 내주셨던 친할아버지의 따듯한 온기도, 서울에서 온 손녀가 행여 심심해 하지 않을까.. 방금딴 호박을 손에 쥐어주시며 수퍼에 가보라던 외할아버지의 즐거운 장난도.. 물론 수퍼에 미리 언질까지 해주셔서 어린시절의 나는 시골에선 호박을 갖고 가면 맛있는걸 담뿍 주는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ㅎ 그렇게 사랑받고 귀여움 받던 기억들이 삶을 사는데 참 큰 힘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