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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개정판
이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북카페 사람들과 책에 대해서 이이갸하다보면 자주 들을 수 있는 제목이였다. 도대체 사서함 110호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마음을 촉촉히 적셔준다는 추천말고는 책에 대해서 잘 몰랐고..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기를'라는 헤드카피만 보고.. 러브레터, 시월애, 동감같은 영화들이 떠올랐었다. 다행히 마포에 위치한 라디오 FM 85.7.. 마포 우체국 사서함 110호.. 같은 공간, 같은 시간속에 9년차 방송작가인 진솔과 피디인 건이 존재한다. 라디오방송국이라는 배경때문인지 음악이 어우러지는 이야기의 흐름이 참 좋았다. 시간이 흐르며 어느새 건에게 일기장 같은 사람이 된 진솔.. 그녀는 건에게 자신의 마음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게 된다. 금새 메인카피를 잊어버리고 두 사람의 조심스러운 사랑의 시작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추리소설 못지 않은 반전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었다. 남의 마음에 예민하지 못한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도 여전했던거 같다. 진솔과 다르게 건의 마음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책을 덮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건의 마음이 곳곳에 남겨져 있었건만.. 그녀의 고백에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시간을 달라는 건과 그만의 보폭과 속도가 있음을 인정하고 기다리는 진솔.. 그리고, 자유롭게 부유하듯 살아가지만 마음만은 애리에게 맡겨둔 선우와 그가 청혼해주길 바라며 들인 봉숭아물이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까운 애리..
책을 읽으며 내내 나의 지난 시간들로 빠져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기억이란.. 필요이상으로 과장되기도 하고, 지워지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한다. 결국 기억이란 마음의 거울에 남은 잔상일 수 밖에 없으니.. 그렇게 내 안에 남아있는 추억들이 책과 함게 얽혀갔다. 잡히지 않는 바람같은 남자곁을 지키고 싶어하는 '애리'의 아픔에 함께 슬퍼했다. 나의 부모가 원하지 않는 남자를 내려 놓지 못하는 마음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사랑의 여운 .. 그 깊은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의 미련에 답답했던 나의 지난 시간을 떠오른다. 그때는 그것이 사랑인줄 알았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내 사랑이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긴 짙은 여운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사랑의 폭을 넓히지 못했던 '진솔'의 선택을 이해하기도 했다. 아프고 싶지 않은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것이고 그때의 나는 더이상 상처받을 자리가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애리를 위해 자신을 조금은 내려놓는 선우의 양보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나 역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조금씩 바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변하는 것이 아니다. 건의 할아버지가 남기신 명언이 있지 않은가? 사람은 30이 넘으면 고쳐서 쓸수 없다.. 보태서 써야 한다는.. 나도 내 사랑도 서로가 못가진 면을 보태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애리였다가, 건이였다가, 진솔이였다가, 선우였다가.. 소설을 타고 나의 지나간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그들의 시간도 흘러가고 있었다.

진솔은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서 '김일성이 사망하던 날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묻는다. 그리고 이 책은 처음 자신이 세상에 나온 2004년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묻는거 같았다. 그 즈음의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랑의 사랑이 무사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만큼 좌절하고 상처입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착한 사람은 아니였나 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나를.. 지나간 사랑들을.. 그리고 지금의 사랑을.. 끊임없이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제서야 그들의 사랑이 무사하기를..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하길.. 바라게 되었다.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