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사라지는 시간 - 오이겐 루게 장편소설
오이겐 루게 지음, 이재영 옮김 / 문예중앙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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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f Wiedersehen! 나메시데 이바노보나가 독일어밖에 모르는 증손자를 위해 여러번 연습해 건낸 말에 돌아온 작별인사.. 이 인사를 나 역시 이 책에 건내고 싶다. 2011년 '독일 도서상'을 수상한 [빛이 사라지는 시간]은 나에게는 참 어려운 책이였다. 내가 독일.. 특히 동독과 구소련에 대해서 잘 모르는 만큼 그 어려움이 더해지곤 했다.
솔직히.. 보통의 독자라면 이 책의 주석은 지나치게 부족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알렉산더가 기센으로 떠났다는 말을.. 그의 부모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순간.. 나는 기센으로 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더 당황했다. 잠시후 그곳이 서독의 지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검색으로 동독 이주민이 서독으로 넘어오면 수용되던 수용소가 위치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독일을 건국하겠다는 꿈을 갖고 돌아온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1M의 책장을 다 채울만큼 집필에 열중했던 아버지와 간호병사로 전쟁에 참여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난 아들이 서독으로 망명한 그 순간 역시 나는 낯선 타인이였을 뿐이였다.
다른 주석 역시 소설의 말미에 모아서 정리되어 있어서 번번히 넘겨보기도 불편했다. 시간의 흐름이 일정하지 않은데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여러사람의 시점으로 기술되는가 하면.. 삼세대의 이야기가 엇갈리며 등장하여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 어려움을 더해주는 상황이였다. 거기다 러시아식의 애칭까지 혼용되어 사용하여서 조금 더 복잡하였다. 인물소개에 그런 것도 적어줬으면 어땠을까..? ㅎ


그렇게 서독으로 떠나갔지만, 다시 돌아온 알렉산더는 이미 먹고=살기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아빠와 쇠락한 동독의 현실을 직면한다. 하지만 비호지킨림프종에 걸린 그 역시 이미 스스로가 병이 되어버렸다. 어린시절 할머니의 집에서 듣던 노래.. 'Mexico Lindo y Querido' 그리고 사람들이 더이상 착취당하거나 억압당하거나 희생당하지 않는 공산주의가 세상을 지배하는 미래를 꿈꾸며 가고 싶어했던 멕시코. 아픈 몸으로 찾아간 그 곳에서 다시 그 노래를 들을수는 있었지만.. 도리어 그는 만만하고 멍청한 백인으로 인식되고.. 그곳에서 착취당하고 억압당하고 희생당한다. 순간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알려준 세상은.. 공산주의에서든 자본주의에서든..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그의 슬픔과 좌절이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당신만 그런것이 아니라고 위로해주고도 싶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멕시코 시베리아, 동독을 배경으로 독일 현대사의 격동을 한편의 장대한 파노라마로 구성하면서 유머러스하고 섬세한 문체로 살아있는 인물들을 형상화하여 뛰어난 소설 미학의 경제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소개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다 동의할 수 있는데.. 유머러스 하다는 부분이 나에게는 그다지 다가오지 않았다. 책을 읽는 내내 정말 건조하고 삭막하다라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몰락한 공산주의와 한 가족의 해체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 마치 흉물스러운 철골을 드러낸 채 쇠락해 가는 회색빛 도시를 들여다 보는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너무 배경지식이 없는 채로 이 책을 읽게 된 것이 실수인것 같다. Auf Wiedersehen! 작별의 인사이지만.. 다음에 뵙겠습니다.. 라는 뜻을 갖고 있는 이 말을 남기는 이유는.. 좀 더 나의 식견이 늘어난 후에 이 책을 다시 만나야 할거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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