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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소설가 - 오르한 파묵의 하버드대 강연록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평점 :
파묵씨, 당신은 이런 것들을 정말로 경함했나요? 라는 질문과 함께 나와 있는 이 목록을 보면서 대충 답을 달 수 있을것 같았다. 이 책은 하버드 대학에서 6차례동안 진행된 강연을 담고 있기 때문에 꽤 명확하게 답을 구할수 있다. 심지어 기억속에서 사라져버렸을때를 위한것인지 찾아보기까지 있기 때문에 '내 이름은 빨강' 속 색깔들이 말을 하기 시작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 바로 찾아볼수도 있다. 만약, 이 강의록을 읽고 시험을 봐야 한다면 쉽게 답할수 있겠지만 리뷰를 그렇게 쓸수는 없는 것이니.. ^^* 소설과 소설가를 읽으며 난 반대로 내가 소설을 어떻게 읽어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읽어갈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설 쓰기란 세상 또는 삶에 우리가 찾을 수 없는 어떤 중심부를 설정하고, 그것을 풍경 속에 - 독자와 상상의 체스 게임을 두면서 - 숨겨 두는 것입니다. 소설 읽기는 같은 작업을 반대로 하는 것입니다. (p.165)
오르한 파묵은 소설을 풍경에 자주 비유한다. 하지만 소설속 세계를 밖에서 그저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내가 직접 들어가 등장인물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다. 그래서 눈앞에 나타난 모든 것들에서 작가가 숨겨놓은 장치를.. 그 속에 내재된 의미를 찾고 중심부를 찾아나가며 주인공들의 경험을 통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실 그가 자주 인용하는 안나카레니나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리고 모비딕을 미리 접하지 않았다면 조금은 이해하기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개념들이 몇가지 있었다. 다행히 미리 읽어본 책들이기에.. 특히, 모비딕을 읽으며 느꼈던 끊임없는 탐색과정이 바로 소설의 중심부를 찾는 과정이였다는 것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난 어떻게 읽어 왔을까? 이 책에서는 두가지 독자를 이야기해준다. '소박한' 독자들 그리고 '성찰적인' 독자' 이 두가지 개념을 이해하려면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걸 떠올리면 된다. 바로 풍경에 빠져든다면 전자이겠지만.. 창문에 있는 얼룩에 신경을 쓴다면 후자인 것이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난 최근에 두가지 입장을 다 경험했다. '피에타'를 읽으며 주인공 강도에 바로 몰입해 그 어떤 중심부도, 암시도 이해하지 못하는 전적으로 '소박한'독자이기도 했고, '여름이 끝날 무렵의 라 트라비아타'를 읽을땐 불륜이라는 소재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편견을 이겨내지 못하고 소설을 즐기지 못했다. 작가들이 끊임없이 추측하고 계산하여 만들어내는 수천수만개의 순간순간들을 난 왜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소설가의 즐거움도 독자의 즐거움도 망치는 사람이 되었던 것일까? 라는 생각과 어떻게 소설을 읽어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하며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소박하고 적당히 성찰적인 시선으로.. 그리고 작가가 예비해둔 중심부를 잊지 않고 주인공과 풍경의 맞물림을 즐기며 읽는 사람이 되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