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라는 수수께끼 -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위기들
데이비드 하비 지음, 이강국 옮김 / 창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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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라는 수수께끼라는 책은 자본의 흐름.. 나아가서 자본의 순환을 경제사와 경제현상등등에 대압하여 분석하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보는 책이다. 특히, 경제의 동태와 정태를 분석한 경제동학이론을 통한 실증적 연구와 고찰이 이루어진 책이다. 이 책을 집필한 데이비드 하비는 맑스경제학의 세계적 대가로 인정받고 있는데.. 특히 이 책이 2009년 중순에 집필되었다는 것이 인상적이였다.  왜냐하면 2011년 9월에 시작되었던 Occupy Wall street, 즉 월가점령시위가 이 책에서 예상하고 제시했던 대안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후로 반자본주의 운동의 멘토역활을 맡고 있다고 하는데 어쩌면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맑스는 영원히 잠들지 못한다는 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이 아닌가 한다.


저자는 신자유주의를 1970년대의 위기에 등장한 계급 프로젝트로 규정한다. 자유와 해방이라는 수사로 포장된 신자유주의는 자본가계급의 권력을 회복강화시키기 위한 정책을 정당화 했다. 특히 신자유주의하에서도 국가권력이 금융기관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이 받아들여졌다. 사적 소유권, 사법적 개인주의, 어떤 종류의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을 인정한 신자유주의에서 국가는 부와 권력을 확대하기 위해 경제의 관리자로서 역활한다. 문제는 그 부와 권력은 자본가의 계층에만 한정된다는 것이다. 사실상 부와 권력의 집중도라는 면에서는 성공적으로 평가될 신자유주의는 필연적으로 도덕적 해이를 가져왔다. 통제력이 사라진 금융시장에서는 창조적 부식회계까지 등장하게 되었고, 과잉유동성으로 인해 은행간의 신뢰가 약화되자 신자유주의를 지탱하던 가상의 유동성마저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신자유주의하에서의 국가는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을 시행하여 도리어 문제를 악화시켰다. 왜냐하면 은행에게 쏟아부어진 그 자본은 국민에게 돌아가지 않고 자신들의 부채를 줄이고 다른 은행을 매입하는데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들의 권력만을 강화시키는 금융기관에 대해 시민들의 대중적, 정치적 분노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자본의 순환에서 그 흐름의 연속성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빠른 순환은 더 많은 이익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 속도를 높이기 위한 많은 도구가 존재하고 자본은 장애를 우회하고자 한다. 신자유주의에서 이 우회방법들은 다양하게 존재하였는데 그 중에 노동에 대한 문제를 저자는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운송시스템의 정비로 이동비용이 줄자 전세계적인 생산이 촉진되었고 이를 통해 노동이 더이상 자본축적의 장애가 되어지지 않았다. 노조는 지역적 한계가 분명한 반면 자본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양하게 나타나는 창조적 혁신으로 인해 노조는 일자리 안정의 댓가로 신기술을 도입하는 '생산성합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상황까지 몰렸다. 노동에 대한 자본가의 권력이 과도했고 임금억압이 발생하면서 잉여로운 자본이 넘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자본축적의 장애지점으로 활동해야 할 노동이 자신의 힘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자본의 축적이 3%의 지속적인 성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윤창출과 잉여자본을 흡수할수 있는 새로운 기반이 필요하다. 사실상 점점 규모가 커지는 세계경제 영역에서 이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비합리적인 시스템을 비합리적으로 합리화하는 방법... 즉 과거에는 전쟁이라는 수단이 자주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런 수단은 공멸하는 길일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자는 1970년대의 위기에 대한 대응과 그에 대한 진화로 신자유주의가 나타났듯이 지금의 혼란은 새로운 진화를 가져올것임을 예상한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대안 중 하나로 전세계적 차원에서의 단호하고 충분히 통일된 반자본주의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본가계급의 재생산과 그 권력의 영속화에 적절하게 도전하기 위해서는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 제시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상당히 난해하게 느껴진 것은 내용보다는 번역과 구성쪽에 문제였다. 저자의 잦은 ()의 사용과 역자의 주석이 혼용되어 있어서 문맥이 부드럽게 읽혀지지 않았고.. 외국의 인명과 지명을 현지발음에 충실하게 우리말로 표기한다고 하지만.. 씨스템, 써비스, 바띠깐, 토오쿄오등의 표기는 확실히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되었다. 특히 국어사전 표기법에 따르면 써비스는 틀린 표기이고.. 또한 중국의 선전은 왜 쉔젠이 아니라 그냥 선전으로 표기했을까? 하는 책과 관련없는 의문마저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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