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 유쾌하고 신랄한 여자 장의사의 좋은 죽음 안내서 시체 시리즈
케이틀린 도티 지음, 임희근 옮김 / 반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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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체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 이미 죽음의 의학화 혹은 산업화된 선진국에서 사는 특권이라고 해요. 생각해보면 저 역시 그러하죠. 죽음이 가장 가까웠던 순간에도, 제가 뵈었던 마지막 할아버지의 모습은 책에 나온 설명 그대로 평화롭고, 자연스럽고, 편히 쉬는 것처럼보이게 꾸며진 것이었을테니 말이죠. 그래서일까요? 저에게 죽음은 부재로 인식되는 거 같아요. 늘 거기 계시던 분이 더 이상 계시지 않는 그런 것이죠.

 그런데 보다 죽음에 밀접하게, 아니 죽음이 일상으로 처리되는 직업을 가진 케이틀린 도티의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과연 장의업계에서 잘 세공한 죽음에 익숙해지는 것이 과연 특권일까? ‘장의사에게 물어보세요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유튜브스타가 되기도 한 그녀는 ‘웨스트윈드’ 화장터에서 일하고 있는 장의사입니다. 아침마다 냉장트럭에서 나오는 시체박스를 처리하는 순간이 자신의 직업의 가장 좋은 부분이라고 하는데요. 그녀에게 전해지는 수많은 시체들, 그 시체 한 구 한 구가 그녀에게는 하나의 모험처럼 다가오기 때문이죠. 때로는 나름대로 탐사취재를 하기도 하면서, 그녀는 한 사람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을 함께합니다. 덕분에 이 책을 읽으면서 저 역시 그녀와 함께 일하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사실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요.

 물론 그녀는 장례업계의 표준화된 프로세스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거기에 대한 의문도 같이 갖고 있기도 해요. 어린 시절부터 키워왔던 죽음에 대한 궁금증의 발로이기도 합니다. 죽음이라는 것,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하죠. 여러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철학을 세웠지만, 저는 칼 융의 말이 가장 와닿더군요. “내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봤자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인간이 죽음과 맺는 관계는 오직 그 사람만의 것이다.” 저는 어떤 관계를 맺게 될지 이제는 준비를 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죽음 그 자체에서 멀어져 있는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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