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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에서 삶을 읽다 - 서러운 이 땅에 태어나
김경숙 지음 / 소명출판 / 2019년 11월
평점 :
아는 한시가 몇 개나 될까요? 일단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건 “태산이 높다하되~”, “동창이 밝았느냐~’ 이 정도였는데요. 몇 권의 한시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점점 한시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는 거 같아요. 그리고 김경숙의 <한시에서 삶을 읽다>를 읽으며, 더욱 그 맛과 멋에 취하게 되네요. 이 책은 한시 감상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작가의 작품뿐 아니라, 그 작가의 삶과 그들이 살아간 시대의 풍경 그리고 시와 어울리는 미술작품도 함께 수록되어 있어요.
서얼이라는
신분의 굴레에도 불구하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벼슬길에 올랐지만, 누명을 쓰고 귀양을 가야 했던 강백의
시에 정선의 ‘연사모종’이 함께하는데요. 절을 찾아가는 선비와 수행하는 스님의 모습이 담겨 있지요. 숭유억불의
정책을 펼쳤던 조선시대에 절을 찾아가는 선비라, 강백이 '어찌하면
바리때와 지팡이를 머물러/ 조용히 절에서 늙어갈 수 있으리.'라고
읊었던 그 마음을 투영하고 있는 그림처럼 보이더군요. 시를 즐겨 쓴 사람들 중에 서얼, 서자, 서녀들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그들이 갖고 있는 주변인이라는
신분상의 특이점 때문이겠지요. 서얼이었던 이봉환 역시 "일을
이룸이 남에게 달렸음은 원래 평범해서라지만/세월은 나를 속이며 너무나 거침없이 흘러간다"라고 했고, 서녀였던 박죽서는 "스물세 해 동안 무엇을 했는데. 반은 바느질, 반은 시 짓기로 보냈네"라며 자신의 삶을 반추하기도 했습니다. 뜻조차 세울 수 없었던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한숨이 제 귓가를 스치는 거 같아요.
그리고
가장 애틋한 사랑이 느껴지던 시는 바로 추사 김정희의 시입니다. 그는 시대의 풍랑을 피하지 못하고 귀양을
가게 되는데요. 평탄하게 살던 시절과 달리 제주에서의 귀양살이는 그에게 힘겨운 것이었죠.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가 그에게는 큰 위안과 힘이 되었는데요. 홀로
집안을 건사하며 귀양간 남편도 살뜰히 챙기던 부인이 건강이 나빠지고 결국 병을 얻어 죽게 되는데요. 부인이
죽고 10여년이 흐른 후에 그가 쓴 짧은 시는 너무나 그의 애틋한 사랑이 그대로 느껴졌어요. 미안하다, 그립다, 사랑한다, 슬프다, 그 어떤 세상의 말도 그의 마음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었던
것이죠. "다음 생에는 남편과 아내의 자리를 바꿔/나는
죽고 그대는 살아 천리 밖에 있어/내 이 마음의 슬픔을 그대가 알 수 있게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