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왕세자들 - 왕이 되지 못한
홍미숙 지음 / 글로세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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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제왕권 시대에 왕의 아들로 태어난다는 것, 그리고 적통을 인정받아 혹은 여러 이유로 왕세자의 자리에 올랐지만 비극으로 마무리 되었던 인물들의 이야기 <왕이 되지 못한 비운의 왕세자들> 아무래도 폐세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사도세자이지만 그는 폐세자가 아니더군요. 후에 복위되었기 때문에 조선 역사에 남은 폐세자는 4명입니다. 그 중 광해군의 적장자 이지가 있습니다. 다른 폐세자들과 다르게 그의 아버지는 왕위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기에 그는 죽어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였어요. 아버지, 그리고 동생까지 왕권을 지켰던 양녕대군의 묘와 비교되어서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지더군요.

폐세자 혹은 요절하여 왕위를 잇지 못한 왕세자, 왕세손, 황태자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조선의 역사와도 연결되는데요. 영조의 아들로는 사도세자가 워낙 유명하지만, 그에게는 큰아들 효장세자도 있었습니다. 아들이 10살에 병을 앓다 죽자 영조는 자신의 왕위와 그의 목숨을 바꿀 수 있다며 슬퍼했다고 해요. 사도세자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영조가 그렇게 잔인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의 삶 역시 참 녹록치 않았단 거 같아요. 효장세자는 사도세자가 죽은 후 정조를 양자로 들이면서 왕으로 추존되었습니다. 추존된 왕 중에 의경세자도 있습니다. 병약했던 그가 요절하고, 그의 부인인 소혜왕후 한씨와의 소생인 성종이 왕이 되면서 그 역시 왕이 되었죠. 소혜왕후 한씨하면 좀 낯설지만 그녀가 바로 인수대비였죠. 뛰어난 정치적인 감각으로 빛났던 그녀가 내훈을 썼다니 조금은 아이러니하기도 했었던 기억이 나요. 그녀는 왕실의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로 승하했기 때문에, 특이하게 의경세자의 능은 왕비가 도리어 상석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요. 예법을 가지고 엄청난 논쟁을 했던 조선시대에 이때는 논쟁이 없었을지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이후의 이야기들을 찾아보고 싶어지는 부분들이 정말 많았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마련이니, 그들의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지 못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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