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삶 - 사유와 의지
한나 아렌트 지음, 홍원표 옮김 / 푸른숲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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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 아렌트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아무래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으면서였는데요. 그 때는 그녀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 ‘생각하지 않은 죄라는 개념이 강렬하게 느껴졌었어요. 그 후에 여러 권의 책들을 더 읽고 여러 생각을 하다 보니, 약간은 회의적으로 변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이걸 주제로 동생과 꽤 오랜 시간 대화를 하기도 했죠. 그래서 그녀가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며 이끌어낸 정신의 삶에 더욱 관심이 갔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정치철학의 정수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물론 소크라테스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지만 저 역시 인간을 진정으로 인간답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 바로 사유와 의지 그리고 판단이라는 것에 공감하게 되네요. ‘사유의지를 마무리하고 판단을 집필하던 중 한나 아렌트가 타계하면서 판단은 강의록의 형태로 수록되었고요. 생전에 편집자에게 판단의 분량이 적을 것이라고 말했던 것을 위로 삼아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읽은 책 중에서도 어려운 책으로는 세손가락 안으로 들어올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죠.

 <정신의 삶>은 한나 아렌트와 고대에서부터 존재한 여러 철학자와의 대화처럼 다가오기도 해요.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니체, 헤겔을 비롯하여 성경을 넘나들며 진행되는데요. 편집자의 글을 보면 주석조차 잘 되어 있지 않다고 하죠.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정말 그 사람들과 자신의 머릿속에서 대화를 할 수 있으려면 책을 하나하나 찾아서는 불가능하거든요. 치열한 논쟁을 통해 한나 아렌트가 사유의지의 필요성을 그리고 그것으로 완성되어 가는 정신의 삶을 가다듬어 나가는 과정을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한나 아렌트가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인 삶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하지만 그녀는 사유편을 통해서 지나치게 형이상학적 관념을 요구하던 철학자들을 논박하고, 현상학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원하더군요. 어쩌면 제가 갖고 있는 인간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게 낮은 것이 아닌가 돌아보게 되는 지점이었습니다. 또한 의지편에서는 무엇을 시작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바라는 바를 이룸에 있어서 그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제가 그 동안 가져왔던 회의론을 어느 정도 내려놓게 합니다. 악의 평범성이라고 하죠. 그 평범성을 깨트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정신의 삶입니다. 물론 또 시간이 지나면 저는 다시 부정적으로 변할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면 이 책이 저에게는 또 하나의 길잡이가 되어주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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