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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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좋아하는 작가인 줄리언 반스의 에세이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 원제는 'The pedant in the kitchen'인데요. 여기에서 ‘pedant’는 현학자라는 뜻으로 번역되어서, 수없이 책에서 등장하죠. 현학자하면 학식을 자랑하며 뽐내는 사람을 먼저 떠올리지만, 이 책에서는 실속 없는 이론이나 빈 논의를 즐기는 깐깐한 공론가라는 의미로 사용된다는 번역가의 주석을 봤어요. 저는 예전에 미드를 볼 때, ‘pedant’를 거의 노이로제에 걸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규칙에 집착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봐서일까요? 책에서 요리책의 레시피에 적혀 있는 방법에 집착하는 그를 보면서 왠지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해지는 거 같아요.

 사실 저는 요리를 잘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레시피에 나오는 그대로 해야 한다는 집착을 갖고 있어서, 왠지 줄리언 반스가 부엌에서 펼치는 고군분투가 남의 이야기가 같지만은 않습니다. 소스를 구입했는데, 하필 조리법이 나온 부분이 상품설명을 번역해놓은 스티커로 가려져 있어서, 그걸 떼느라 고생한 기억도 있거든요. 심지어 요리책에 나오는 작은 양파, 중간크기의 양파, 큰 양파를 보면서, 도대체 어떤 기준이냐고 따져 묻는 줄리언 반스와 똑같은 그리고 유사한 고민을 지금도 반복할 때가 많고요. 미국의 저명한 요리사 리처드 올니가 쓴 잼 레시피를 보며 그는 고민하죠. ‘두 손을 합쳐 최대한 덜어낼 수 있을 만큼의 딸기라니, 이런 엄마나 이모에게 레시피를 물어보면 돌아오던 적당히와 같은 이야기 아닐까 합니다. 특히나 요리책에 나오는 모든 문장에 집착하며 그대로 하려는 줄리언 반스에게는 엄청난 도전과 같은 말이었겠죠. 어떤 면에서는 <10분 안에 하는 프랑스 요리, 현대인의 생활리듬에 맞추기>라는 책이 도움이 될 것 같군요. 대기업의 제품을 잘 활용하는 법을 알려주니까요. 물론 그에게 높은 성공률을 안겨주며 자신감을 북돋아준 요리책을 쓴 분은 마르첼라 하잔이지만 말이죠. 저는 아직까지는 10분안에 하는 프랑스 요리책에서 눈길을 못 떼겠네요.

 물론 이런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리에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와 필요한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요리의 효율을 높여주는 그 어떤 도구보다 필요한 것은 여기는 음식점이 아닙니다라는 표지판이라는 말, 그리고 사람들을 초대해 대접하지만 이것은 디너파티가 아니다라는 마음가짐 역시 너무나 좋았습니다. 요리를 할 때, 마음의 부담이 확실히 덜할 것 같거든요. 요리사이자 테니스선수인 케네스 로의 조언도 같은 맥락이죠. 함께 테니스를 쳤던 줄리언 반스는 나이가 들수록 늘어나는 그의 테니스 실력에 비결을 물어보았는데요. 답은 바로 좀 더 느긋한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었죠. 그건 비단 테니스뿐 아니라 요리에도 적용될 것 같다는 그의 추론이 맞다고 생각해요. 나름 저도 부엌에서 보낸 시간이 늘어날수록 조금 덜 조금해지고, 조금 덜 레시피에 집착하고 있으니 말이죠. 언젠가 저도 디너파티는 절대 아니지만, 사람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할 날이 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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