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걸스 1 걷는사람 세계문학선 3
마샤 홀 켈리 지음, 진선미 옮김 / 걷는사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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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도 2차 세계 대전이라는 거대하고 비극적인 시간 속에서 여성의 삶에 초점을 맞춘 책을 읽었었는데요. 이번에 읽은 <라일락 걸스> 역시 그러한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어요. 이 책의 작가인 마샤 홀 켈리는 잡지에 실린 캐롤라인 패리디의 이야기를 읽고, 영감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쟁을 겪으며 고아가 되었거나, 육체적으로 또한 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입은 여성을 위해 헌신했던 여성인데요. 책에서도 캐롤라인 이라는 이름 그대로 등장하며, 그녀가 세상에 펼친 사랑의 정신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저는 라일락의 색과 향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그래서 제목에 확 호기심이 생긴 이유도 있습니다. 그리고 표지도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그 토끼와 주사바늘이 의미하는 것은 상당히 가슴 아픈 것이었습니다. 나치의 여성 전용 수용소인 라벤스브뤼크에 있던 여성 중에서 생체실험을 받은 여성들을 래빗이라고 불렀던 것이죠. 실험 대상이었던 여성들이 극심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깡총깡총 뛰어다닌다고 해서 래빗이라고 했다니, 사람이 갖고 있는 무감각함이 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그저 나치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러한 언니와 엄마까지 함께 이 곳으로 끌려와야 했던 카샤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하기도 힘드네요.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녀가 무기력함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말이죠. 그리고 그녀와 헤르타가 다시 만날 때, 과연 그렇게 화해가 가능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솔직히 했습니다. 저라면못할 것 같았거든요. 어쩌면 결국 자기 자신을 용서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또 한 명의 여성이 등장합니다. 헤르타, 그녀를 보면 <어느 독일인의 삶>이라는 책이 떠오릅니다. 괴벨스의 비서였던 브룬힐데 폼젤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그녀의 삶과 헤르타의 삶이 겹쳐지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여성으로서 의대를 다니는 것도 힘겨웠는데, 그 것으로 생계는 유지가 안되고, 엄마의 치료비 역시 감당할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인체실험의 담당자가 됩니다. 물론 그녀의 비중은 매우 낮은 편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시선이 많이 가던 여성이었습니다. 과연 나라면 어땠을까? 계속 생각하게 되는 캐릭터이기도 했고요. 물론 사람들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이야기할 수도 있어요. 너무나 유명한 말이 되어버린, 악의 평범성과 생각하지 않은 죄를 말이죠. 악의 평범성에는 공감하지만, 아직도 생각하지 않은 죄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고민이 많아서인지, 헤르타가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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