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 망국의 신하에서 일본 경제의 전설이 되기까지
시부사와 에이이치 지음, 박훈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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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처럼 백도 경장百度更張에만 힘쓰고 개명을 정치 방면에만 구하게 된다면, 백성을 보호할 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정부가 백성을 보호할 길을 얻지 못하면 백성은 어떻게 숨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258p

 근대 일본 경제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중국의 한 다큐멘터리 덕분이었습니다. ‘왼손에는 논어를 오른손에는 주판을이라는 말로 소개되었던 시부사와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겼었지요. 그러다 이번에 그의 자서전 <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읽게 되었습니다. 진심을 다한 유품으로 생각해달라는 말이 인상적이었고, 예스러운 어투와 어휘가 처음에는 난감하기도 했었네요. 메이지 유신 전문가 박훈 교수의 역주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래된 글을 읽는 느낌에 빠져들며, 점점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전해진 지혜가 무엇인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맨 뒤에 연표가 있는데, 1840년에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1931년에 영면에 들기까지 그의 일대기에 옅은 글씨로 나열된 역사적 사건만 살펴보더라도 그가 살던 시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막부에서 메이지 정부의 관료로 그리고 상공업을 부흥하는 것이 먼저라는 신념으로 일본의 자본주의의 기틀을 닦는데 앞장서게 됩니다. 또한 경제적 부흥에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람이기에 교육에도 앞장섰고, 각종 자선기관을 세우는데도 몰두했습니다. 은행, 철도, 전기, 방송, 항공에 이르기까지 기간산업에 집중했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재정 개혁에 관한 상주문을 보면 백성을 지킬 길이 어디 있는지 명확하게 이해하고 그대로 나아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막부에서 활동하던 시절 그리고 민부공자를 수행하고 파리 만국 박람회를 다녀오던 이야기도 그러하고,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의 유연성입니다. 양이론을 주장했지만 외국에 나가서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외국어를 배울 결심하고, 자신이 속한 막부가 무너졌지만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인재상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빠르게 활로를 찾고, 또한 메이지 정부에 들어가는 과정도 저에게는 그렇게 다가왔거든요. 자신이 어린 시절 목표한 곳을 향해 나아감에 있어서 굽혀야 할 때는 굽히고, 필요한 것은 취하고, 버려야 할 것은 버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처음에는 도덕경영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의심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의 일대기를 보니 논어와 주판을 양 손에 들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사탄의 맷돌이라고 말했던 칼 폴라니가 이 책을 읽었다면 아주 조금은 위안을 얻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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