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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정원, 고양이가 있어 좋은 날
이시이 모모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샘터사 / 2018년 11월
평점 :
토란 이파리는 크다. 움푹 팬 이파리에
밤사이 내린 이슬방울이 마치 보석처럼 담겨 있었다. 솜털이 자란 넓은 이파리 위의 이슬방울은 이파리
끝에 살짝 손대기만 해도 반짝이며 데구루루 도망친다 그것을 조심조심 작은 사발 한 가득 받아 와 먹을 갈았다.
그 먹물로 색종이에 글을 써서 칠석 대나무에 달면 글씨체가 예뻐진다고 해서 해봤는데
전혀 예뻐지지 않았다. 사실 안 예뻐져도 된다. 여름날 아침의
그 시원시원한 이슬방울이야말로 직녀가 내게 준 선물이다. -‘칠석의 추억’
어린이들을
위한 책을 쓰고, ‘곰들이 푸’와 ‘피터 래빗 이야기’같은 작품을 번역하기도 한 이시이 모모코의 에세이
<책과 정원, 고양이가 있어 좋은 날> 파장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인생의 행복이라고 여겼다고 하는데요.
책 역시 그랬던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녀가 번역한 작품들과 그녀의 글 역시 파장이
참 잘 맞는 것 같아요. 따듯하고 다정하고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니까요. ‘칠석의 추억’처럼 어린 시절의 추억도 제 머릿속에서는 한 편의
동화처럼 그려질 정도로요. 상처를 입고 정원으로 찾아 들어 어느새 가족이 된 기누와 인간이 만든 마법(?)을 이용하여 자유롭게 살아가는 듀크가 함께하는 일상을 함께하다 보면, 문득
부럽다는 생각마저 들더라고요. 사람과 자연과 동물이 함께 어우러져서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평화로워
보여서일까요?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가 이 책을 읽고 “그녀의 에세이를 읽는다는 것은 빛이 잘 드는, 그립고 올바른 장소에
가는 것과도 같다”라고 했다는데, 너무나 공감이 가는 말일
수 밖에 없네요. 에쿠니 가오리의 조금은 예민한 듯 섬세한 일상을 담은 에세이도 참 좋아했는데, 언뜻 다른 듯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섬세한 시선이 참 닮아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1907년에 태어나 일본의 근현대사를 살아왔고, 글을 읽다 보면
전쟁에 대한 이야기도 분명히 느껴지는데요. 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든, 자신의 일상에 오롯이 마음을 쓰며 살아가는 그 모습이 기억에 남거든요.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세상의 변화에 맞서 싸울 수 없다면, 자신을 지켜줄 것에 의지하라는 조언을 들었었는데요. 그 의미는 알겠지만, 딱히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었는데, 이 에세이를 읽으며 이거구나 싶기도 했어요. 더없이 좋은 날로 스스로
채워나간 일상, 고양이와의 이별 역시 아름다운 백일홍 나무와 인연과 위로로 받아들이는 이시이 모모코의
책을 더 읽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