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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이야기 -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피엘 드 생끄르 외 지음, 민희식 옮김 / 문학판 / 2018년 9월
평점 :
아무래도 우화하면 이솝우화가 먼저 떠올라서인지, 교훈적이고 그 끝은
권선징악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는 것 같아요. 거기다 프랑스인들에게 800년간 사랑받아온 우화라고 하면 더욱 그런 느낌을 갖게 하죠. 하지만 <여우 이야기>는 그런 기대를 조금은 당황스럽게 그리고
조금은 유쾌하게 깨트려버리네요. 마지막 왕이 여우에게 보낸 찬사와 여우의 묘비명까지 보고나니, 왠지 시니컬하면서도 우아한 유머를 던지는 프랑스인답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말이죠.
이야기는 낙원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에게서 시작됩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긴 신은 지팡이를 하나 선물하며 바다에 넣고 휘저으면 도움이 되는 동물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하죠. 하지만
이브는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줍니다. 아담이 지팡이를 사용할 때마다 가축류들이 등장하지만, 이브가 휘저으면 위험한 동물들이 나타납니다. 그렇게 나타난 동물
중에 하나가 바로 여우였는데요. 여우는 영리하고 지혜로운 동물이라고 말하지만, “우리의 조모 이브에게 영광 있으라!”라는 이야기의 마무리를 보면
이 글 자체를 여우가 쓴 것이 아닌가 싶어요. 특히나 여우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유력한 충고자’ 혹은 ‘지혜로운
자’를 뜻하는 이름을 가진 르나르의 큰그림같단 말이죠.
여우 르나르는 지혜롭다기보다는 똑똑하고, 똑똑하기보다는 교활하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인물이죠. 묘비명처럼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평생을 고민하던 위대한 가장이자 지혜로운 여우’인 그는 그 당시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종교도
왕도 크게 개의치 않고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대로 사용한다는 느낌이랄까요? 문득 이 이야기가 12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봉건주의가
무너지고 이슬람에서 형성된 자본주의가 전쟁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되던 시절, 어쩌면 여우는 자본가의 모습과도
닮은 느낌이 들죠. 그 당시 세상을 지배하던 논리가 아니라, 자신만의
논리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더욱 그러했고요. 물론 제가 받은 인상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수 있지만, 그래서인지 여우는 지극히 현대인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처음과 달리 여우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와 다른 생각을 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고, 그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면에서도 매력적인 우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