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한 여정 - 판이 바뀐다, 세상이 바뀐다
정세현.황방열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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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회담이 빈번하게 열리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의 통일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한반도 문제 최고 전문가로 활동한 정세현의 <담대한 여정> 아무래도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에는 남북의 관계가 급격하게 얼어 있었기 때문에, 도리어 문재인 정권에서 펼쳐지는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공존으로의 움직임이 그의 시선을 따라서 살펴보니 도리어 잘 설명되는 느낌이 듭니다. 올해만 3번의 남북정상회담이 펼쳐질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따라가기 힘들 정도였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게 읽었던 책이기도 하고요. 문득 백조가 호수 위에서 우아하고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수면아래에 있는 다리가 쉴새 없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국민에게는 파격적인 행보로 보이는 그 모든 것들이 성립되기까지, 뒤에서 실무자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었는지도 느껴지는 책이니까요.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아무래도 모두문과 합의문을 분석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거기에 쓰여진 단어 하나하나가 협상과 합의의 결과라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죠. 심지어 이전 합의문과 비교를 하면서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는데요. 예를 들면 6.12 북미공동성명의 구조를 1994 1021일 제네바 기본합의와 2005 9.19 공동성명과 비교해보는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비핵화가 가장 우선으로 즉 선결과제로 제시되었고 그 이후에 북미수교와 경제협력(지원) 그리고 9.19 공동성명에서 평화협정을 4항으로 추가한 정도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6.12 북미공동성명에서는 새로운 관계가 1항으로 제시됩니다. 그 이후 평화구축, 비핵화의 순서대로 이루어지죠. 그리고 북한 조선중앙TV의 보도까지 덧붙여보면, 이 것이 갖고 있는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방송에서도 많이 언급된 CVID에 대한 이야기도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시행정부 시절 존 볼턴에 의해 주장된 CVID,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를 북한에 요구한다는 것은 그들의 반발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대북경제제재를 버텨내면서 자신들의 핵미사일을 고도화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1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CVID카드를 꺼낸다는 것은 상당히 무리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북한 역시 상호주의 차원에서 CVIG,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체제보장을 요구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양쪽 다 수용할 수 없는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이 갖고 있는 무게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정세현은 지금을 한반도 역사의 변곡점으로 보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지금 정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죠. 그리고 정부뿐 아니라 시민의 역할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북이 화해를 하고 평화와 공존의 시대로 나아가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정말 많은 논란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균형을 잘 잡고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시민의 힘일 테니 말이죠. 사실 저도 통일하면 비용문제를 먼저 떠올렸고, ‘그 독일도 휘청했다잖아라는 말에 귀가 펄럭인 적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책을 읽으며 통일 비용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너무나 자주 들려오는 퍼주기에 대한 논란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해보고, 제 나름대로의 답을 찾을 수 있었거든요. 급변하고 있는 남북관계를 바라봄에 있어서, 꼭 필요한 책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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